이경복 대변인(국제구국연대 Save Korea Aliance International), 在캐나다 은퇴회계사 / 캐나다 거주
이경복 대변인(국제구국연대 Save Korea Aliance International), 在캐나다 은퇴회계사 / 캐나다 거주

 

- 선관위를 피고로 한 선거무효 소송 -

지난 2020년 실시된 4.15총선 관련 선거무효소송이 지난 7월28일 대법원에 의해 '기각' 처리되었다. 6개월 이내에 처리하도록 되어있는 것을 2년3개월이 지나서야, 그것도 제기된 총 126건 중 단 2건에 대해서 내린 판결이다. 판결이 이렇게 지연된 것부터가 이미 직무유기요, 정의가 부인된(Delayed justice is justice denied) 불의한 일이거니와, 따라서 이번 판결이 제대로 내려질 리가 없으리라는 것은 진작부터 예상했던 일이다. 그렇긴 하지만, 막상 판결문에 적힌 '기각이유'라는 것을 보니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소송의 특징은 낙선후보가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를 상대로 대법원에 낸 선거무효소송이란 점이다. 낙선후보와 당선후보 간의 다툼이거나, 낙선후보가 선관위에 낸 소청이 아니다. 따라서 대법원은 선거무효의 사유를 판단함에 있어서 선거에 관련한 규정에 의거하여 선거를 집행한 '선관위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선거에 관련한 규정을 위반하여 선거를 집행한 것으로 혐의를 받고 있는 선관위를 피고로 하는 건을 다루는 '대법원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이 때 선거와 관련한 '규정'이라 함은 공직선거법(이하 "공선법")과 동 규칙 및 관련 대법원 판례를 말하며, 그들을 위반했다(이하 "위반행위")함은 선관위가 선거사무를 집행함에 있어 동 규정을 직접 위반한 경우는 물론, 제3자에 의한 위반행위에 대하여 적절한 시정조치를 취함이 없이 묵인·방치하는 등의 이른바 중과실(gross negligence)도 포함된다. 다시 말하면, 위반행위가 행해졌으면 그것이 누구에 의해 행해졌던 간에 그에 대한 행정적 책임은 전적으로 선관위에 있는 것이다.

또한, 선거소송은 원고인 피해자가 선관위에 의해 내려진 부당한 처분에 대하여 권익을 구제받으려는, 성격상 일종의 행정소송이다. 그러므로 선관위가 내린 처분의 적법성에 대한 증명책임 즉, 선관위가 선거를 집행함에 있어 선거와 관련한 규정을 위반하지 않고 적법하게 집행했다는 증명책임은 피고인 선관위에 있는 것이다.

요컨대 선거소송에서의 원고측은 소송을 제기하는 데 필요한, 선관위가 행했거나 또는 방기했을 것으로 혐의되는 위반행위에 대한 기초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판결문에서 지적된 소위 '원고측 증명책임'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사실이지만 사실로 인정해 줄 수 없다니 ..! -

대법원은 선관위의 증명책임과 관련하여는, 판결문의 "구체적인 선거무효사유에 대한 판단"란을 통해 선관위에 의해 내려진 처분에 대하여 그 적법성을 지극 정성으로 변호해 주고 있다. 한편 원고측에게는 '원고측 증명책임'이 있다며 다음과 같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지적을 하고 있다.

즉, 원고측이 주장하는 위반행위 사실(what)이 인정되려면, 위반을 한 주체가 누구인지(who)를 특정하고, 위반을 행한 일시(when)와 장소(where)와 방법(how), 나아가 위반행위 사실의 존재를 합리적이고 명백하게 추단할 수 있는 사정(why)이 존재한다는 구체적 증거를 제출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으므로 '위반행위 사실을 사실로 인정해 줄 수 없다'는 말이다! 마치 형사소송에서 검사에게나 요구할 의심의 여지가 없는(beyond a reasonable doubt) 엄격한 증거를 원고측에게 요구한 것이다!

이런 기괴한 논리와 잣대로 재검표에서 나온 이른바 배춧잎투표지, 일장기투표지, 빳빳한 투표지, 좌우 여백이 다른 투표지 등 온갖 희한하고 비정상적인 투표지를 일괄 불문에 부친 것이다. 이들은 모두 도저히 투표 현장에서는 나올 수 없는, 따라서 사후 투입된 위조투표지임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선관위가 선거를 적법하게 집행하지 아니 했다는 또는 못했다는, 그러므로 <선거무효의 결정적인 실물증거들>이다.

비유하자면, 식당에서 주문한 국밥에 불결물이 들어있는데 손님더러 그 불결물을 누가 넣었는지 특정하라며 그러지 못할진대 잔말 말고 그냥 먹으라는 식이다. 재판부는 한술 더 떠서 "위조하였다면 굳이 이와 같은 형태로 투표지를 작출하여 문제의 소지를 남길 이유가 있었겠느냐"며, 핀잔인지 비아냥인지를 판결문에 추가 적시하였다. 그야말로 "선거를 통해 구성된 국가기관(국회)의 지위에 영향을 미칠, 신중을 요하는" 중차대한 판결문에,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법을 떠나서, 법관의 직업윤리상으로도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부적절한 처사(professional misconduct)가 아닐 수 없다!

아니, 선관위가 위반행위를 했다고 혐의하기 때문에 선관위를 피고로 하여 제소한 건을 가지고 위반행위를 한 주체가 누구인지를 특정하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인지 모르겠다. 설사 위반행위를 한 것이 선관위가 아니라 제3자일지라도 그에 대한 행정적 책임은 전적으로 선관위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닌가?

또한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위반행위를 한 그 제3자가 누구며 그가 왜 어떻게 했는지 등의 경위와 증거를 조사하는 일은 선관위의 기본책무이다. 그래서 공선법 제272조는 선관위에게 선거범죄조사권, 증거물품수거권, 임의동행 또는 출석요구권, 현장제지권, 통신관련 선거범죄조사권 등과 같은 사실상 경찰권에 준하는 권한까지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요컨대 이번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이를테면 도둑을 맞은 피해자와 도둑을 잡는 입장에서 도둑질을 한 경찰과의 다툼에서, 피해자더러 누가 도둑인지 특정하라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또한, 도둑을 특정하지 못했으니 '도둑맞은 사실을 사실로 인정해 줄 수 없다'는 식이다. 나아가, 그런고로 동 도둑맞은 사실로 인해 피해자가 받은 피해에 대해서는 살펴 볼 필요조차 없다는 식이다. 철저하게 도둑을 옹호한, '설마하니 이게 법원의 판결이겠는가'싶은 수준의 캥거루 판결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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