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인권이사국 낙선...‘남탓’ 바쁜 신구 정권”

▲조맹기 박사 / 前 서강대학교 교수
▲조맹기 박사 / 前 서강대학교 교수

 

유엔이 큰 소리를 친다. 국제사회의 힘이 무섭게 다가 온다.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가 대한민국이 아닌가? 그것 잊으면 배은망덕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사회주의권이 말이 아니다. 사회주의 종주국 러시아가 유엔에서 철퇴를 맞고 있다. 중앙일보 김현수 뉴욕 특파원(2022.10.14.), 〈유엔 ‘러의 불법병합 규탄’ 143개국 참여, 외교 압박〉, 이은택 기자, 〈나토 ‘러 핵 쓰면 물리적 대응’ 푸틴 위협에 참전 배제 안해〉, 한반도에서 사회주의 세력은 물러갈 때가 되지 않았나? 이승만 전 대통령의 궤적을 살펴보자.

국내는 ‘유엔 인권이사국 낙선’에 여론이 점점 달구어 진다. 유엔이 인정한 국가에서 인권이 x판이다. 조선일보 선정민 기자(10.14), 〈서해 공무원 피살된날 밤..文 정부, 자료 106건 삭제〉, 조선일보 김경필 기자(10.14), 〈김문수 ‘文은 총살감, 지금도 같은 생각’〉, 중앙일보 정시내 기자(10.14), 〈김문수(경사노위 위원장) ‘박근혜 22년형, MB 17년형..문 전 대통령 더 심한 형 받아야’〉, 김 위원장은 인권에 대해 엄하게 다룰 것을 권장한다. 그 주변에서 유탄을 맞고 있다. 중앙일보 백태인 기자(10.14), 〈감사원, 서훈(전 안보실장)∙박지원(전 국정원장)∙이인영(전 통일장관) 수사 의뢰〉, 사회주의 근처에 가다 철퇴를 맞게 생겼다.

기업은 사회주의 문화에 진저리 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헌법정신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매일경제신문 장용승 기자(1014),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들의 회사 소개는 대체로 이렇게 시작한다. 목표를 '더 나은 세상'에 두고, 기술 혁신을 진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이 같은 '모토'처럼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 덕분에 우리 삶이 편리해졌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통화는 기본이고 내가 보고 싶은 동영상을 보고, 내가 원하는 쇼핑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배달시키는 등 편리한 세상이 됐다. 흥미로운 것은 '편리한 생활'이 가능해졌지만 동시에 소통이 어려운 '갈등사회'가 됐다는 현실이다. 이념, 세대, 젠더 등 각종 갈등 요소가 분출하고 있어 한국이 '갈등공화국'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0개국을 대상으로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종합해 갈등지수를 산출한 결과 한국은 세 번째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갈등 결과가 나온다. 국제 관계를 우습게 본 것이다. SkyeDaily 김백건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연구원(10.14),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公-경험도 전문지식도 없이 자리 나눠먹기...‘낙하산 잔피판’〉, 이것 하려고 갈등 일으킨 것인가?

이젠 작업장에 폭력과 테러까지 허용하려고 한다. 문화일보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10.13), 〈노란봉투법案, 헌법 제10조 위반이다〉, 산업재해징벌적 손해배상죄라고 하더니 이젠 노조의 폭력을 정당화해준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눈 앞에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정의당과 함께 일명 노란봉투법안(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태세다. 노동계는 노조 탄압용 무분별한 소송을 막기 위해서는 이 법안 처리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경영계는 노동쟁의도 법이 정한 범위를 벗어나면 당연히 불법파업이므로 손해가 발생했으면 당연히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석의 절대다수를 차지한 민주당이 정의당과 함께한다면 노란봉투법안의 국회 통과는 쉬울 것으로 보인다...문 정권도 포기했던 노란봉투법안이 다시 살아난 것은, 지난 8월 대우조선해양이 그 하청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47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때문이다. 즉, 하청회사의 노조가 파업 과정에서 원청회사의 사업장을 점거함으로써 작업 중단으로 인한 큰 손해가 발생해도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입법화하겠다는 게 이 법안의 취지인 것이다. 그러나 이 목적은 헌법 제10조에서 파생된 자기책임 원칙에 위반되는 것으로, 입법 목적이 부당하다. 일각에서는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만 하면 앞으로는 노조가 불법파업을 하더라도 더는 손해배상 소송은 당하지 않을 것으로 해석하는 듯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불법행위에 대한 면책이 노란봉투법 하나로 보장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민법 제750조에서는 엄연히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노조법상의 특별규정으로, 소송제기권을 박탈한다 하더라도 민법 제750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법원과 법학자 모두는 특별법으로 면책하더라도 피해자는 민법 제750조에 의거한 불법행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

산업은행은 지금 대우해양 출혈로 사경을 헤맨다. 기업은 돈에 목이 탄다. 그래도 ‘노란봉투법’인가? 조선일보 최형석 기자(10.14), 〈급전으로 버티는 기업들..단기부채 20%, 제2금융권 대출 30% 증가〉, 중앙일보 한지혜 기자(10.14), 〈올들어 8월까지 재정적자 85조..나랏빚 1030조 돌파〉, 그래도 선동하는 언론이 있다.

자유민주당 고영주 변호사(10.12), 동아일보 사설면에서 〈‘언론의 자유는 법치를 초월하여 무한정 보장될 수 없다!-1964년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이라고 했다.〉, ‘조작∙선동 일삼은 좌익 언론은 사회의 흉기 ’,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야 하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시위 과정에서 많은 언론이 벌인 광란의가짜뉴스들을 기억하십니까?’

국회, 기업, 언론이 좌익 문화로 물들어 있다. 역사적 사실을 보자.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기록이다. 李 대통령은 프린스턴 대학 정치학 박사출신이다. 그 당시 정치학과 교수이며, 총장인 윌슨 박사가 후일 미국 28대 대통령이 되었다. 당시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은 좌우익으로 다투고 있었다.

윌슨은 1902년 11월에 대선에 당선되고, 8년 간(1903∼21년) 대통령직을 유지했다. 때 마침 1919년 1월부터 미국∙영국∙프랑스 등 승전국은 파리에서 모여 국제연맹 태동의 국제질서 회복을 위한 강화 회의를 개최헀다. 그들은 그 회의에서 14개조를 다루었다. 그 선언을 토대로 독립을 요구했던 식민지 국가들은 그의 민족 자결의 언어를 민족국가의 보편적 가치로 수용하며 반식민주의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https://ko.m.wikipedia.org.wiki 우드로 윌슨.

‘윌슨 대통령’은 19019년 1월부터 ‘민족자결주의’를 강변한 것이다. 그 논리에 따르면 민족국가는 개인의 자유∙정의∙평등을 중심으로 하나의 단위로 묶여지는 결속체였다. 국가는 국민을 대표하고, 국가를 중심으로 다른 국가와의 적자생존 경쟁을 염원했다. 즉 개인의 주체성, 그리고 세계 속의 주체성을 지닌 민족국가의 건설은 당시 개인적∙국가적 과제였다. 여기서 민족적 자주 의식과 역사의식을 가진 민족주의가 정신적 지주로 등장했다.

적기에 기미독립운동(1919. 3. 1.)이 벌어졌고, 노령임시정부(3.12)는 대통령 손병희, 부통령 박영효, 국무총리 이승만에 피선했다. 그리고 이승만을 국무총리에 추대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4∙13) 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으로 피선(6∙14) 했다. 그의 명의로 美英佛伊에 정부수립을 정식 통고하고, 한국 국제명칭(Republic of Korea)으로 공식 발표헀다.

당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중앙총회장, 안창호)는 1919년 2월 ‘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명의로 작성한 위임 통치 청원서를 윌슨과 미국 신문사에 송부하였다. 그 내용 세가지로 ①열강은 한국을 일본의 학정에서 자유롭게 할 것이며, ②열강은 장치 한국의 독립을 보장할 것이며, ③한국을 일정 기간 국제연맹의 통치에 둘 것 등을 청원서에 담았다. 당시 ’신채호는 ‘이승만은 나라를 되찾기도 전에 나라를 팔았다’고 성토하였고, 이동휘 국무총리는 총리를 사임하면서 ‘위임통치청원을 외교적 대실패’라며 비판하였다.

③째가 문제가 되어,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탄핵을 당했다. 임시의정원은 1925년 3월 23일 이승만을 탄핵, 면직시키고 박은식을 임시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당시 소련은 국내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 그 이유로 ①이승만은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에 거의 머물지도 않았고, ②소극적 태도로 직에 임하였으며, ③국고 수입 방해, ④헌법질서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등의 상해 임시정부 헌법에 근거하여 탄핵을 시켰다(박찬승, 2014).

한편 3∙1 운동에 당혹한 것은 일본이었다. 이승만과 윌슨이 존재하는 한 이젠 더 이상 무단정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일본은 민족∙민권의 향상, 언론∙출판∙집회∙결사 등의 자유가 허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쿄아사이신문은 1919년 4월 5일 사설에서 ‘소란의 유력한 원인이 아(我)) 총독 정치의 결함이 있다라고 지적하고, 한국 통치의 개혁’을 주장했다. 또한 오사카아사히신문은 ‘현대의 식민 정책은 옛날과 달리 무단으로 시종할 것이 아니라 교화(敎化)를 주안으로 한 문화정책(文化政策)으로 달성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는 1920년 1월 6일 일간지 동아일보, 조선일보, 시사신문을 허가하고, 개벽 잡지가 허가되었다. 그 후 지하신문은 지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좌파는 아직도 이승만 대통령을 폄하한다. 배은망덕하다. 그 사고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1945년 이후 유엔이 대한민국을 이렇게 보존토록하고, 6∙25 때는 지켜줬다. 그런데 동아일보 사설(10.14), 〈유엔 인권이사국 낙선, 반성은 않고 ‘남탓’ 바쁜 신구 정권〉, 똑똑한 건가 멍청한 인사들인가? 그래서 김문수 위원장이 하는 말들이 아닌가? ”한국이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낙선해, 연임에 실패했다. 아시아태평양 그룹에 할당된 4개 이사국 자리를 놓고 치러진 선거에서 123표를 얻어 5위에 그쳤다. 한국이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낙선한 것은 2006년 초대 이사국으로 선출된 이후 처음이다. 주요 인권지수 순위가 한국보다 떨어지는 방글라데시, 베트남 같은 나라에도 뒤졌다니 충격적이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유엔의 3대 핵심 기구 중 하나로 꼽히는 핵심 위원회다. 그런 국제기구의 이사국 자리를 놓치면서 한국은 국제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낼 중요한 기회들을 상실하게 됐다. 북한인권결의안 등 한반도 관련 논의나 표결에도 참여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한국이 2019년부터 4차례 연속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는 등 북한인권 문제 제기에 소극적이었던 것이 후보국 지위를 약화시켰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내적으로도 대북전단금지법을 시행하고 언론중재법안을 밀어붙이다가 국제인권단체들로부터 비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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