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열 발행인
조충열 발행인

‘文 政權’의 탄생(誕生)과 豫告된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침몰(沈沒),,, 국민들, 지켜보기만 할 것인가?

- 역사적인 사실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우리들이 실천해야 하는 교훈(敎訓)

지난해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총 9명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채로 전원일치 의견으로 “朴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다”고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대표하여 판결문을 읽었다. 이 판결은 대대손손 후손에게 알려야 할 역사적인 판결이고 충분히 가치가 있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을 표방하고 있고 법치국가이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선진국의 대열에 서 있는 것이 세계의 공인된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이상한 사회현상이 일어나는 연유는 무엇일까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든다.

국민들이 피부에 와 닿는 역사적인 사건은 바로 ‘임진왜란’이 그 좋은 예이다. 이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때고 더는 늦출 수가 없음이라.

국가와 국민 개개인의 상호간의 발전이 무엇이든지간에 다르다면 그 국가는 결속이 힘이 든다. 그 결과는 암울한 미래이다. 우리들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국가는 공인되고 실력있는 전문화된 관계학자들의 객관적인 연구로 역사를 기술하고 이를 책으로 만들어 국민들에게 알려야 하고 읽게 하여야 한다. 또 교육적인 내용과 교훈 등의 소중한 가치를 살려 알려야 할 권리와 의무가 동시에 있다. 왜 그런가하면 그것은 한 국가의 역사는 싫튼지 좋튼지 간(間)에 국민 전체가 걸어온 길이다. 일부 사람들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은 역사적인 평가를 쉽게 생각하는 여럿 경우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국민들은 역사기록의 평가를 가벼이 여긴 결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처절하게 뒤받침한다.

필자는 좋은 사례(事例)로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년~1598년, 선조25~31, 7년간의 전쟁)을 본보기로 언급(言及)하겠다.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4일에 일본 군대가 부산포로 치밀하게 무장하여 쳐들어 오면서 시작되었다. 조선군은 무방비 상태로 무너졌고 우위에 선 화포와 조총에 위력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리하여 조선 군대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여 순식간에 조선이라는 일본군에게 무참히 짖밟혔고 나라는 7년 동안의 긴 고난과 역경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당시 명나라의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하여 명나라에서 군대가 들어 왔으나 그 당시 조선의 백성들은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긴 시간동안 불안함과 일본의 무자비함에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피해를 고스란히 힘없는 백성들에게 돌아가고야 말았다.

당시 조선(朝鮮) 조정(朝廷)에서는 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위기를 몰랐던 것이 아니란 말이다. 결국 조선통신사로 정사에 황윤길(黃允吉), 부사에 김성일(金誠一)을 임명해 일본에 가서 사정을 살피고 돌아오게 하였다. 그런데 일본을 다녀 온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의 보고가 엇갈렸던 것이다. 황윤길은 "전쟁이 날 것"이라고 보고를 하고 부사 김성일은 "전쟁이 날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상반된 보고를 임금인 선조(宣祖)에게 올리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선조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데 선조의 선택은 머지 않아 큰 화를 자초(自招)하고야 말았다. 참으로 안탑갑지만 잘못된 선택의 결과는 비참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그 당시의 지도층은 반성과 백성들의 위(爲)하기는커녕 자신들이 속한 세력의 기득권의 추구에만 몰두하여 분당정치의 시초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러한 악폐가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을 필자는 하게 된다. 그러나 필자는 대한민국의 참 일꾼, 즉 정의로운 사람들이 등장하여 나라를 구할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다.

안동(安東)이 배출한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懲毖錄)’을 후손에게 유비무환의 정신을 본 받아라고 쓰여 졌으나 ‘징비록’은 후손들이 정성을 다해 책의 의미를 깨닫는데 실패하고야 말았다. 왜냐하면 그 책은 조선보다는 일본에서 더 많이 읽히고 반성하여 다시 한번 도약하는데 쓰였다.

정작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후손이 제대로 섬기지 못한 결과다. 징비록은 우리보다는 일본의 것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1910년 일본이 다시 침범케 하는 도구로 이용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반성하여야 한다. 왜, 우리들은 ‘유비무환의 지침서인 징비록’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였나를...

그리고 착각에서 헤어나야 하겠다. 가장 한국적인 안동이라는 곳, 이 곳의 유림들이 또 다시 오늘날의 국난을 극복하는데 앞장서야 하고 정신세계와 그에 따른 실천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나라가 어려울 때 항상 위기를 극복한 저력있는 고장, 인물을 배출한 곳이라고 말로, 글로 할 것이 아니라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투사를 배출하였다는 구름 잡는 생각을 이제는 실천할 때다. “우리 조상이 어떻고”가 아닌 조상의 유지를 받들어 나라 구하는데 앞장설 것을 당부한다.

결론적으로 자유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항시 자신 스스로 결단내려야 한다. 누가 삶을 대신 살아줄 수가 없는 것 아닌가? 지식인이라고 자처만 하지 말고 국민들이 모르면 알게 하고 또 앞장서야 한다. 文 정권의 실체는 법률안의 국회 제출로 만 천하에 들어난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왔음에도 상황판단을 못한다면 무능한 것이고 무지한 것이리라.

이 위기(危機)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機會)를 잡을 수 있는 시점(時點)이다. 우리 민족은 역전(逆轉)의 용사(勇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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