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네빌 체임벌린
▲아서 네빌 체임벌린

 

1. 제2차세계대전 발발 : 아서 네빌 체임벌린(Arthur Neville Chamberlain, 1869년 3월 18일 ~ 1940년 11월 9일)은 영국의 정치가, 외교관이다. 41대 영국 총리를 지냈으며, 정치인 조지프 체임벌린의 둘째 아들이다.

1931년 맥도널드 내각의 재무상에 올라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성공하였다. 1937년 총리가 되자 독일에 대한 유화 정책을 써서 전쟁을 막고자 하였으며, 이듬해인 1938년 뮌헨 회담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유화 정책이 실패하고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외교 책임을 지고 이듬해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헨리 알프리드 키신저
▲헨리 알프리드 키신저

 

2. 베트남의 공산화 : 헨리 알프리드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 1923년 5월 27일~)는 1971년 8월 대통령 안보보좌관이던 그는 중국 베이징을 극비리에 방문해서 저우언라이 총리와 회담을 가졌고, 그 결과 1972년 2월21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간의 미․중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1] 1969년과 1973년 사이에 그는 베트남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북베트남의 외교관들과 비밀적으로 협상을 지도하였다. 1973년에 미국, 북베트남, 남베트남, 베트콩 사이에 평화 조약이 맺어졌다. 그 공로로 북베트남 교섭인 레득토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레득토는 수상을 거부) 그러나, 그 조약은 종이 조각에 불과, 전쟁이 2년 더 계속됐다.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에 관련된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이스라엘군의 해체할 동의서 조정에 도움을 주었다. 닉슨과 포드 정권 아래 빛나는 외교 정책을 펴내기로 알려졌다.

 

 

위의 두 사례를 보면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는 명확하지 않은가?

대한민국에서 누가 '전쟁'의 위협에서 국민들을 벗어나게 해야 하는가?

첫째, 정부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수호해야 할 의무를 가장 먼저 해야 한다.

둘째, 정치권에서 국민을 대표해서 그러한 '위협'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러나 現 정부나 정치인들에게 기대를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고 유약한 지경이 사실(事實)이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스스로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야 위한 행동을 더욱 더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 무능하고 기대할 것 없는 정부나 정치권을 믿고 있을 것이 아니다.

따라서 現在 대한민국 국민들은 스스로 '생명과 재산'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적에게 항복을 하느냐?' 갈림길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이것이 국민들의 숙명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1950년 6월 25일의 비극이 또 다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경험치가 '역사'이다. 역사적인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것이 진리(眞理)로 받아들려 진다. 이는 조선시대의 임진왜란(1592년)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그 시절 조선의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몰두한 정치가들에 의해 또 잘못된 판단을 한 지도자가 '전쟁준비'를 하지 않아서 백성을 도탄(塗炭)에 빠뜨린 뼈아픈 역사를 잊어 버렸다고 밖에 볼수 없다. 현재도 매한가지다. 그렇다.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에 잘 표현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와 모든 정치인들은 다시 한번 진심으로 나라를 위해 '심사숙고(深思熟考)'해 주길 진정으로 바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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