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광풍사회가 결국 공포정치로 귀결.

▲조맹기 박사
▲조맹기 박사 / 前 서강대학교 교수

문재인 청와대는 모든 국민을 정치판으로 끌어넣었다. 노동도 정치, 경제도 정치, 법조도 정치, 문화도 정치이다. 정치는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이지 모르는 것이 정치의 실체인데 정치판은 모든 것을 다하는 것 같이 비친다. 꼭 북한 사회를 닮았다. 그 속내는 공포정치이다. 그러나 실제 정직하게 정치한 박근혜 대통령은 감옥에 집어넣어 4년 9개월 동안 감금시켰다. 검찰, 헌법재판소, 대법원은 집까지 탈탈 털고 그의 정치 생명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지금 병원에서 별 건강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마땅하게 살 집이 없어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 책을 사주기 행사를 벌일 판이다. 국민이 정직함을 지키지 못한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돌아서 다시 선거판을 벌이고 있다.

지난 26일 국회의원 김영식(구미시을) 의원이 주최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60주년 기념 컨퍼런스」 행사에서 이영세 전 대구사이버대학교 총장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60주년 이후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서 “정부발표에 의하면 박근혜정부의 말기인 2016년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626.9조 원(GDP 대 36%)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5년 후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1년은 965.3조(47.3%)으로 증가하였다. IMF에 의하면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2026년 88.7%에 도달하여 선진국 중 증가 속도가 1위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2021년 1인당 GDP는 IMF 추산에 의하면 35.195달러로 보고 있다. 한 때 아시아 4룡으로 주목을 받던 싱가포르가 66, 253달러이고 미국이 69.375달러이다.” 정치판 만들다 아마추어 사회를 계속 만들고 있다. 그 사회 계속 되면 공급망 생태계가 다 망가지게 생겼다. 지금 아마추어 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인공지능시대로 갈수록 아마추어 사회는 발을 붙일 곳이 없다. 그들은 다 실업자가 된다. 갈수록 투자할 자본이 필요한 사회에서 자본이 고갈되었다. 그 많은 소득은 전부 어디에 간 것인가? 자영업자, 중소기업자의 비명은 하늘을 찌른다.

젊은 층의 도덕적 해이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직장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니, 낙태가 심해진다. “2017년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국회 세미나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낙태아는 한 해 약 110만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연간 신생아 약 30만 명의 4배에 달하는 숫자로 만약 낙태만 출산할 수만 있다면 출산율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그 문제 계속되면 지금 50,〜60만 명에서 30만 수준이면 대학 반 이상 문을 닫아야 된다. 더욱이 1987년 이후 각 정부는 노동개혁은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귀족노조’는 정치판까지 휘감고 있다. 대선 후보들도 그들에게 편승하면서 표 얻을 생각만 한다. 정치판에서 노동생산성이 올라갈 이유가 없다.

다음 선거도 가관이다. 동아일보 사설(01.28), 〈李·尹 퍼주기 공약 돈 얼마나 들지 계산은 해보고 내지르나〉, 이들은 더욱 정치 광풍사회를 만들어갈 태세이다. 그들은 국민을 그들의 노예로 만들고 싶다. 그게 다 객기이고, 간 큰 남자들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퍼주기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만나는 계층이나 직업군, 방문 지역에 맞춘 수조∼수십조 원 단위의 공약을 두 후보가 남발하면서 이행에 필요한 비용은 가늠조차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이 후보가 잇따라 내놓은 ‘맞춤형 기본소득’ 공약은 청년 연 100만 원, 농어촌 연 100만 원, 문화예술인 연 100만 원 등이다. 해당 연령층의 인구, 업종 종사자 수로 볼 때 청년 기본소득에 14조2000억 원, 농어촌 10조1000억 원, 문화예술인에 2조1000억 원이 든다. 5년간 100조 원 넘는 돈이 필요한 ‘보편 기본소득’ 공약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임기 개시 100일 안에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50조 원 지원’을 약속한 윤 후보의 선심 공약도 비슷한 수준이다. 코로나 재건기금 50조 원, 자영업자 임대료 나눔제 50조 원을 비롯해 노인층 기초연금 인상에 수조∼수십조 원, 병사 월급을 200만 원으로 올리는 데 4조8000억 원, 농업직불금을 두 배로 늘리는 데 2조5000억 원, 영유아를 둔 부모 급여 지급에 2조 원이 필요하다. 두 진영 모두 현금성 공약 이행에 필요한 비용이 200조 원 안팎까지 늘었다. 올해 본예산 604조4000억 원의 3분의 1이다....상대 후보의 현금성 공약을 ‘묻고 더블로’ 받아치는 일까지 반복되면서 두 후보 진영은 공약 이행에 들어갈 총비용, 재원조달 방안의 기본 얼개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동 신문 사설(01.28), 〈與野 정치개혁은 입으로만 하나〉, “대선 후보들이 최근 들어 정치개혁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국민내각과 통합정부를 구성하고 국무총리를 국민이나 국회가 추천하는 방안을 내놨다. 윤석열 후보는 현재의 청와대 조직 구도를 해체하고 대통령 집무실도 광화문으로 이전하겠다고 했다. 안철수 심상정 후보도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청와대 축소 등 방안을 제시했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란 오명을 조금이나마 씻기 위해서라도 정치개혁 경쟁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문제는 실천이다. 그러나 주요 정당과 후보들의 요즘 행태를 보면 저마다 정치의 틀을 완전히 바꿀 것처럼 거대한 계획을 쏟아내고 있지만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 선거용 급조 방안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말만 앞서거나 지금 당장 할 일을 제쳐둔 게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 과시욕이 한국 사회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국민도 같이 정치판을 만들어가 있다. 386 운동권 세력들이 얼마나 통계 조작을 잘 하는지 그 자료가 소개되었다. 조선일보 배준용 기자(01.29), 〈확진 50만명 살펴보니...93%가 무증상·경증, 발열보다 기침 많아〉, 명절만 되면, 코로나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문재인 청와대는 국민에게 공포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 광풍사회가 말로가 결국 공포정치로 귀결이 된다. “2020년 1월 20일 시작된 코로나 사태가 어느덧 2년이 넘었다. ‘지긋지긋하고 무시무시한’ 코로나가 단기간에 종식될 것이라는 전망은 헛된 기대였다. 그간 75만명 이상이 확진되고 6500명 이상이 코로나로 사망했다. 인명 피해뿐 아니라 코로나 유행 억제로 소모된 경제적·사회적 비용은 천문학적이다...코로나와 방역을 둘러싼 갖가지 논란 중에 본지가 정부의 코로나19 정보관리시스템에 등록된 확진자 50만여 명의 증상 데이터를 단독 입수해 분석했다. 질병관리청으로부터 해당 데이터를 제출받은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이번 코로나 증상 데이터 공개는 국민의 막연한 공포감과 코로나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다...지난 4일까지 코로나19 정보관리시스템에 등록된 국내 확진자 51만7494명을 중증도별로 분석해본 결과 확진자 중 무증상자가 25.7%로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발열, 기침과 같은 가벼운 증상에서 근육통, 오한 등을 동반하는 심한 독감 수준의 증상을 포괄하는 ‘경증’ 비율은 67.6%다. 즉 확진자의 93% 이상은 증상이 전혀 없거나 심하면 독감 정도로 앓고 회복했다는 것이다. 국내 확진자 중 입원 치료를 받은 중등증 환자는 약 5%를 차지하고 중증 이상 환자는 1.6%다.”

그렇다면 386 운동권 세력의 정치광풍 사회를 넘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중앙SUNDAY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01.29), 틱낫한 스님이 남긴 것〉, “가령 한 의사가 당신에게 3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치자. 당신은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운명을 한탄하고 시간을 낭비하며 고통과 절망에 몸을 맡길까? 아니면 그 3개월의 매 순간을 깊이 있게 살아갈 결심을 할까? 세계적 명상 지도자 틱낫한 스님이 했던 죽음에 관한 법문의 일부다. 실제 ‘3개월 시한’ 선고를 받은 한 젊은이가 그를 찾아와 털어놓은 고민이라고 한다. 스님의 대답은 매 순간을 깊이 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면 3개월도 짧지 않은 시간이라는 말을 덧붙였다고 하는데, 깊이 있게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좋음-나쁨 이분법 경계 … 깊이 있게 살라. 지난 22일 입적한 틱낫한 스님을 향한 추모의 물결이 곳곳에서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그의 법문에 영향을 받은 이가 적지 않은 듯하다. 이 시점에 그가 남긴 ‘죽음 명상’을 되새겨보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틱낫한은 죽음을 삶과 별개로 여기지 않았다. 태어나고 살아가는 것만큼 죽음을 중요하게 여겼다. 삶과 죽음은 서로 맞물려 있어 아주 친한 친구 같다고 했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날은 우리가 다른 모양들로 이어지는 날’이라고 했던 그의 법문이 새삼 다시 떠오른다. 태어남과 죽음의 ‘공동 작업(collaboration)’이 있기에 삶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죽음과 태어남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매 순간 우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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