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曠野] - 이육사(李陸史)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모든 산맥들이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끊임없는 광음을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지금 눈 내리고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다시 천고(千古)의 뒤에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절명시(絶命詩) -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愛君如愛父(애군여애부) 임금을 아비처럼 사랑하고憂國如憂家(우국여우가) 나라를 집안처럼 걱정하였네白日臨下土(백일림하토) 밝은 해가 아래 땅을 내려다보니昭昭照丹衷(소소종단충) 충심(忠心)을 환히 비춰 주겠지 조광조(趙光祖, 1482, 성종 13~1519, 중종 14):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17세 때 어천찰방(魚川察訪)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가, 무오사화로 희천에 유배 중인 김굉필(金宏弼)에게 학문을 배웠다. 이때부터 시문은 물론 성리학의 연구에 힘
김병연의 '문전박대'는 '世心의 야박함을 풍자한 詩이다.조선 후기 시인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심(性深), 호 난고(蘭皐)이다. 속칭 김삿갓 혹은 김립(金笠)이라고도 부른다. 아버지는 김안근(金安根)이며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였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기 때문에 연좌제의 의해 집안이 망하였다. 당시 6세였던 그는 하인 김성수(金聖洙)의 구원을 받아 형 병하(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다.
용의 눈물 작자미상(2017.) 용상에서 내려오라는하야의 목소리는턱밑까지 다가와귀청이 떠나갈듯 겁박하며아우성 치는데 신하들 잘못둔 죄로모든 덤터기 뒤집어 쓰고올무에 걸려버린 처참한 여왕박근혜 어머니도 나라에 바치더니아버지도나라에 바치고자신도 나라밖에 모른다며온몸 불살르며쓰러져가는나라 구해보겠다는일념으로그리도 동분 서주 하더니만 이제는 믿었던 신하들도하나 둘 등 돌리며물러나라 소리치니참담한 이 일을 어이할꼬 할수만 있다면 차라리 목숨던져속죄양 되고도 싶으련만나라 뜯어먹을 승냥이 떼만 우글그려조바심만 깊어가니기가 막힐 노릇이다 용은 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