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명시(絶命詩) -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 절명시(絶命詩) -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절명시(絶命詩) -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愛君如愛父(애군여애부) 임금을 아비처럼 사랑하고
憂國如憂家(우국여우가) 나라를 집안처럼 걱정하였네
白日臨下土(백일림하토) 밝은 해가 아래 땅을 내려다보니
昭昭照丹衷(소소종단충) 충심(忠心)을 환히 비춰 주겠지

 

조광조(趙光祖, 1482, 성종 13~1519, 중종 14):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17세 때 어천찰방(魚川察訪)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가, 무오사화로 희천에 유배 중인 김굉필(金宏弼)에게 학문을 배웠다. 이때부터 시문은 물론 성리학의 연구에 힘을 쏟았고, 20세 때 김종직(金宗直)의 학통을 이은 김굉필의 문하에서 가장 촉망받는 청년학자로서 사림파(士林派)의 영수가 되었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김굉필이 연산군의 생모 윤씨의 폐위에 찬성했다 하여 처형되면서 가족과 제자들까지도 처벌당하게 되자, 조광조도 유배당하는 몸이 되었다. 정계의 현실을 몸소 겪은 그는 유배지에서 학업에만 전념했다. 도학정치(道學政治)를 주창하며 급진적인 개혁정책을 시행했으나, 훈구(勳舊)세력의 반발을 사서 결국 죽임을 당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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