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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균 교수의 칼럼

다시 온 6. 25

2018. 06. 22 by 안동데일리 편집국
김영균 교수(대진대 공공인재법학과)
김영균 교수(대진대 공공인재법학과)

다시 온 6. 25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1957년 반야월이 가사를 짓고 이재호가 곡을 만든 노래다. 이 노래는 6.25때 우리 민족이 겪은 뼈아픈 상흔을 담고 있다. 노래 가사를 새겨보면 기가막힌다. 아닌 밤중에 인민군이 들이닥쳐 남편을 납치해서 철사줄로 꽁꽁 묶어 끌고가는데, 철사줄로 꽁꽁 묶어놨으니 움직이면 철사줄이 살을 파고 들었을 것이고, 앙상하게 말라빠진 팔목뼈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미아리 내리막길을 휘청거리며 걸을 때 핏덩이 아기를 업은 아내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고개는 아직도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그대로 있다. 맨발로 절며 끌려갔으니 아마도 잠자가다 잡혀간듯하다. 살아만 돌아오라고 절규하던 그 남편은 살아서는 커녕 죽은 시신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6. 25때 김일성은 남한의 각개인사 8만 3천명을 납치해갔다.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북한에 납치되어 가던 남편과의 애타는 이별을 노래한 곡이다. 납치되어간 남편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채 68년째 맞이한 6. 25는 카렌다에서도 지워진지 오래이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1953년 오리엔트 레코드사에서 발표한 곡으로 작고한 가수 현인이 노래하였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 ....” 이 노래는 철의장막 북한에서 모진 설움을 겪으면서 살아가더라도 북진통일의 그 날이 오면 손을 잡고 웃으면서 얼싸안고 춤을 쳐보자고 끝을 맺고 있다.

천지간에 혈육이라고는 남매뿐인데 어떻게 변함이 있겟느냐고 한탄한다. 남매가 남북으로 흩어져 오가지도 못하고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을 한탄하는 노래이다. 6. 25때부터 철의장막이었던 북한은 아직도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의 1인독재국가 지옥으로 남아있고 김정은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평화를 깨트린 사람들이 평화라는 이름을 팔면서 다가온다. 도데체 이 땅의 진실은 무엇인가.

 1948년 K. B. C레코드사가 발표한 “안해의 노래”라는 곡은 1절에서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었기에 이 몸은 돌아 서서 눈물을 감추었소. ... 홀로 가는 이 가슴에 즐거움이 넘칩니다.”라고 노래를 부른다. 이어서 2절에서는 “님께서 가신 길은 빛나는 길이옵기에 태극기 손에 들고 마음껏 흔들었소...” 라고 하면서 “눈보라가 날리는 차거운 밤길에도 달과 별을 바라보며 무운장구 비옵니다”라고 끝을 맺는다.

1948년 정부수립과 동시에 국군이 창설되었고 휴전선에는 충돌이 잦았다. 군인이 아내로서 남편을 전선에 보내고 굳건히 살아가는 아내의 모습을 담은 곡으로 1952년 인기가수 심연옥의 노래로 다시 레코드가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남편을 사지에 보내고 가슴에 즐거움이 넘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즐거움이 넘친다고 했을까. 남편이 희생되더라도 북한군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이 더 절박했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이 흐르니 남편의 죽음은 개죽음이 되었다. 그토록 애지중지 놓치지 않으려고 숱한 목숨을 잃어가며 보따리 이고지고 찾아온 자유대한에 자유는 삭제되었다. 젊은이들은 2년동안 썩는 군대가 더 이상 즐겁지도 않고, 390명만의 6. 25 전쟁의 희생자는 평화라는 이름의 축제에 쓰여질 양들이 되었다. 역사를 잊는 국민들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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