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이 작가

다큐멘터리 소설 <광무황제>

"왕이 되었으나 모든 것은 왕의 계획과 반대되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글 : 이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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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문 -

  내가 이 어려운 역사와의 대화를 시작한 것은 어쩌면 무모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생각한 부분에 대해서 매 순간 확인 받으며 전율 그 이상을 느꼈기에 그것을 글로 풀어내서 알려주고 싶었다.

  도대체 100년 전의 이 분들은 어떤 분들인 걸까?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나는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분들이 고민하고 아파했을 그것들이 내 안에 오롯이 살아나기 때문이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50-60십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그로부터 몇 십여 년 만에 작지만 힘 있는 나라로 지금은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 특별한 DNA가 어디에서 왔을까? 라는 고민을 하던 나는 그 고민의 고리이자 원천을 찾았다.

  우리나라는 잔인하고 무서운 제국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까지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독립투쟁이 있었다. 나는 역사와의 대화 속에 나라를 되찾을 수 있는 근원적이고도 원천적인 힘을 주신 분을 만났다. 그분은 다름 아닌 고종, 광무황제였다. 우리는 광무황제를 무능한 왕, 망국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왕으로 배워왔다.

  당시, 일본은 세계만방에 무능한 우리황실을 대신해 보호국으로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면서 사실은 불법과 강제로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고, 그 중심에 서 있던 황제의 팔과 다리를 철저하게 잘랐던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고립무원에 처해있던 황제를 친일각료들은 외면했고, 황제는 홀로 외로운 싸움을 계속 했던 것이다.

우리는 광무황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명성황후가 살해되고 고종은 총·칼 앞에 무력으로 유폐되어 있었다. 그런 황제는 일본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러시아공관으로 몸을 피한다. 몸을 피한 황제는 그날 조선에 와 있던 외국공사관들의 알현과 일본 고무라 공사의 알현을 허락한다.

황제가 진정 죽음이 두려워서 몸을 피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황제는 친일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내각을 즉시 폐하고 새로운 내각을 구성한다. 황제는 아관파천시기 자신이 구상하고 있던 근대화된 조선에 대한 계획을 하나하나 실행에 옮긴다. 무지한 백성들을 계몽하기 위해 수백여 개의 학교를 세우고, 선생을 길러내고, 국문으로 된 신문을 만들어 보급하고, 군사와 경찰권을 확립했고, 토지에 대한 양전지계사업, 상공업을 진흥시키고, 도시를 개조하고, 국토를 개발하는 등 개혁사업에 숨 가쁜 행보를 보인다.

우리는 일본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근대화 되었다고 배웠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우리는 일본보다 2년이나 먼저 전기를 들여왔고, 전차 또한 동경보다 3년이나 앞질러 들여왔다. 그리고 우리의 황제는 마지막으로 세계열강이 조선을 보호국화 하려는 것에 일침을 가하듯 당당하게 황제국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우리의 자력으로 근대국가를 건설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러·일전쟁을 코앞에 둔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는 힘겨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화하는데 가장 두려운 존재인 광무황제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반황제 친일각료들로 구성한 정부를 만들어 대한제국의 일을 방해하고 정부와 황제 사이를 벌려 놓으며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드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

  나는 감히 말한다. 우리가 모두 우러르는 세종대왕이 설혹 광무황제의 자리에 왔더라도 이보다 더 잘 할 수는 없었으리라고··· 우리는 철저하게 일본이 그려놓은 고종의 상을 배워왔다. 아버지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사이에서 어쩌지 못한 무능한 왕. 그것은 사실무근임을 밝혀두고 싶다.

광무황제는 불행하게도 세종대왕이 만난 이방원 같은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고, 정치노선이 극과 극으로 다른 아버지를 만났던 것이다. 정치적 야망이 큰 이하응은 10살 아들을 왕으로 세움으로 실질적 왕이 되었고 뒷날의 광무황제와는 다른 노선인 쇄국정책을 고집하며 정사를 펼쳐나갔다.

두뇌회전이 빠른 광무황제는 일찍부터 서양문물과 국제정세에 눈을 떠 무지한 조선을 다른 열강과 같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고민을 하며 성장했다. 그런 광무황제가 성인이 되었으니 당연히 왕좌에 올라야 했지만 왕의 권력을 맛본 이하응은 권력을 내놓지 않으려 왕을 견제하는 방법으로 며느리인 명성황후에게 그 화살을 돌렸던 것이다. 권력은 그런 것이다. 한편, 슬프지만 아들과도 나눌 수 없는 것이 바로 권력이다.

조선을 개혁하려는 큰 뜻을 품고 왕좌에 오르려는 광무황제와 아버지 이하응의 대립은 어쩌면 불가피했다고 생각한다. 왕후인 그녀는 명석했고, 지아비이자 군주인 광무황제의 고민을 같이 나눈 동지 같은 관계였다고 전해진다. 그런 권력구도속의 부자관계 사이를 일본이 비집고 들어왔던 것이지 광무황제가 무능하고 명성황후가 치맛바람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은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난 뒤에 혼자 남은 광무황제의 행보를 보면 잘 드러난다. 이런 사실들을 우리는 외면했고, 일본이 던져주고 간 자신들이 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허상을 붙잡고만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무지몽매하게 역사의 심판아래 이미 다 드러난 상황마저도 자신들만 인정하고 있지 않은 일본의 죽은 그림자를 따라야 하는 것인지 가슴 아프다. 이제는 일본이 만들어 놓은 날조된 역사의 그늘에서 우리 스스로 벗어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알게 된 이런 것들을 나의 뒤를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만큼은 제대로 알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썼다.

  내가 쓴 책의 원제목은 고종의 아들이다. 이 제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물어왔다. 순종을 얘기하는 거냐고? 혹은 의친왕이나 영친왕을 말하는 거냐고? 아니다. 내가 말하고 있는 고종의 아들은 바로 우리 모두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광무황제가 길러낸 아들과 딸인 우리들을··· 나라를 빼앗긴 우리에게 나라를 되찾을 그 힘을 그 원초적인 DNA를 심어 주신분이 바로 광무황제인 것처럼 그 DNA로 나라를 되찾은 우리들이다.

  광무황제가 꿈꾸었던 독립된 국가, 근대 국가이면서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대한제국. 19세기 광무황제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설계했던 것이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께 이 책을 바칩니다."

2017년 봄

이재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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