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름달 아래에서 원을 그리며 둥글게 돌면서 여인내들이 강강술래놀이를 하고 있다.

- 제2회 -   

경북예절원장 / 인동(仁憧) 강석우

【우리나라의 세시풍속(歲時風俗)】

「세시풍속의 연원」 
세시풍속이란 동일한 여건하의 생활권에서 계절과 연관되어 매년 반복되어 행해지는 민속(民俗)을 말한다.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생활습관과 토속적인 신앙 대상이나 언어와 사고도 같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행위, 놀이, 먹거리 등도 같아지는데 집중적으로 행해지는 시기는 명절(名節)을 중심으로 한다.

우리나라 세시풍속은 1432(세종14)년에 완성된 신찬팔도지리지를 거듭 증보하여 1530(중종25)년에 간행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1669(현종10)년에 민주면이 쓴 동경잡기(경주를 중심)와 1749(영조25)년에 유득공이 쓴 경도잡지, 1819(순조19)년에 김매순이 쓴 열양세시기, 1849(현종15)년에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 소개 되어 있다.  

「계절‧명절과 풍속의 관계」
세시풍속은 일정지역 주민이 한데 어울리거나 가족과 함께 놀고 마시고 먹으면서 겨루는 일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춘하추동(春夏秋冬)의 계절과 상관있는 명절들이 중심이 된다. 그 시기도 농경(農耕)사회였기 때문에 농한기(農閑期)에 집중되었고, 음력(陰曆)을 쓰기 때문에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이렇게 달마다 명절이 있고 계절에 알맞은 놀이와 먹거리 예절 등 풍속이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으나 지금까지 큰 명절로 알려지고 행해지는 명절은 4대 명절인 설날, 한식, 단오, 한가위라 할 것이다. 또한 이 명절에는 목적이나 깊은 뜻이 있는데 설날은 산사람을 위한 명절로 한해를 보내면서 살아계신 조상에게 새배를 드리고 새해를 맞아 건강을 기원하며, 아랫대에게도 설빔을 하는 등 가족전체가 명절을 즐긴다.

한식은 죽은 이를 위하는 명절로서 겨우내 언 땅이 풀리고 초목의 생장이 시작되는 때이며, 겨울 사이 눈사태나 혹은 해빙 이후 땅이 녹아 축대가 무너지지는 않았는지 염려되어 성묘를 하는데 초목이 생장하는 때이므로 묘지를 수축하고 돌을 세우고(立石) 나무와 떼를 심는 데 적기이므로 묘지를 손보는 사초(莎草)를 한다.

한가위는 산사람과 죽은 이를 함께 위하는 명절로 직업을 따라 멀리나간 아랫대나 혹은 출가한 딸들이 좋은 계절에 부모님을 찾아뵙는다. 또 고례에는 속절즉 헌이시식(俗節則 獻以時食)이라 하여 ‘민속 명절이면 명절 음식을 올린다.’고 해서 햇곡식과 과일로 차례준비를 한다. 장마철이 지나고 초목의 생장이 멈추는 계절로서 사태로 무너지거나 웃자란 잡초나 나뭇가지가 뒤덮지 않았는지 염려되어 성묘를 하는데 웃자란 풀을 깎고 나뭇가지를 치는 일을 벌초(伐草)라 한다.

「한가위(秋夕)」
〔날짜〕: 음력 8월 15일을 한가위라 하는데 가을달이 밝은 날이라 추석(秋夕)이라고도 하며, 가을의 한가운데라는 의미로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한다.

〔유래〕: 어느 민족 어느 나라든지 명절은 다 있다. 그러나 그 명절의 역사적 기원(起源)이나 유래(由來)가 분명한 명절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고유한 놀이 날인 한가위에 대하여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 3대 유리왕(儒理王) 9년(32)조에 분명하게 적혀있다.

임금이 신라를 세운 6촌의 명칭을 바꾸고 각 촌장들에게 성(姓)을 내려주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임금이 신하들에게 성을 내려준 최초의 기록으로 백성이 성을 갖는 제도가 시작된 것으로 현재도 경주(慶州)를 본관(本貫)으로 하는 李, 崔, 孫, 鄭, 裵, 薛씨 등이 그때 생긴 성씨이다. 임금은 또 벼슬의 등급을 17등급으로 나누어 명칭을 정하여 행정체제도 정비하였다.

또, 6촌의 아낙들을 두 편으로 가르고 왕녀들을 보내 각각 한편씩을 거느리고 7월 16일부터 1달 동안 큰 마당에 모여 삼베 길쌈내기를 하고, 한가위에 많고 적음을 가려 진편이 음식을 만들어 이긴 편을 대접하며 춤추고 노래하며 즐겼는데 ‘가위’라 한다고 했다. 가위는 이두(吏讀)로 가배(嘉排)라 썼는데‘기쁘게 논다’는 의미이고 ‘한’은 ‘으뜸 [一]’,‘큰 [大]’의 의미로‘가장 큰 놀이’라는 뜻으로 ‘한가위’라 하게 된 것이다.

32년에 첫 번째 놀이였으니 2017년의 한가위는 1986번째의 한가위가 되며, 이렇게 2000년이나 되는 명절은 다른데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문화민족의 자랑이요 긍지라 할 것이다.

〔차례(茶禮)〕: 
조상묘지의 웃자란 풀을 베고 나뭇가지를 치는 벌초(伐草)를 하고, 명절음식을 차려 올리는 예를 드린다.

〔음식〕:
◦송편(松餠) : 한가위 음식은 멥쌀가루를 반죽해 밤이나 콩으로 속을 박아 반달같이 오므려서 솔잎을 깔고 찌면 향긋하게 송진 냄새를 풍기는 송편이 된다. 
◦토란국 : 한가위의 국은 토란국으로 소화를 도와주는 효험이 있어서 풍성한 음식을 많이 먹을 것인데 소화를 돕기 위해 한가위 음식이 된 것으로 전한다.

〔놀이〕: 
◦줄다리기 : 남녀가 함께 모여 줄다리기를 하고, 혹 줄이 끊어져 남녀가 엎어지면 크게 웃으며 즐긴다고 했다. 이기고 지는 데에 재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남녀노소가 한 덩어리로 엉키는 것을 즐겼던 것이다.   
◦닭잡기 : 넓은 마당에 닭을 풀어놓고 맨손으로 닭을 잡는 놀이를 하는데 실제로 닭을 잡은 사람이 자기가 잡은 닭을 상으로 가져간다. 많은 사람이 맨손으로 닭을 잡으려고 한꺼번에 덤비다가 닭은 날아서 도망가고 남녀노소가 한 덩어리로 뒤 엉키는 것을 보며 즐겼으며, 이 외에도 소싸움놀이, 원 놀이와 저녁에는 강강술래, 달맞이 놀이도 했다.
◦우리나라의 세시풍속 중에서 한가위는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풍성하고 농사도 힘든 일은 끝나 한가하며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장 큰 명절이다. 그래서 옛 부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한 속담도 있다.

〔공휴일 지정〕: 
1980년 이전 까지만 해도 추석은 공휴일이 아니었다. 당시 직장이 시내에 있는 사람들은 추석전날 퇴근 후 장보기를 해서 오후 막차로나 아니면 이륜차로 시골 부모님이나 맏이 집으로 저녁 늦게 가게 된다.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서둘러 차례를 올리고 아침식사를 하기 바쁘게 직장에 출근을 해야 만 하니 명절 답게 보내지 못하였던 때였다.

그러다 1980년대 초반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접어들어 농촌의 많은 인구가 도시로 진출하여 추석에 고향을 찾는 귀성객이 기하급수로 늘어나게 되자 정부에서 처음에는 1일만 공휴일로 지정하였다가 2000년대 들어와서 추석전일과 후일을 합해 3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게 되어 요즈음은 일천 만 명이상이 대이동하는 우리고유명절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원래의 명절을 즐기고 보내게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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