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 웹진 담談 9월호 “협상” 발간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이용두)은 지난 10일, “협상”을 소재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9월호를 발행하였다. 협상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둘 이상의 당사자가 만족스러운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협력하고 설득하는 화법”이다. 역사상 국가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국가 간의 갈등과 대립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한 수많은 대립과 갈등 사이에서 탁월한 협상으로 상호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때론 더 큰 대립과 고통을 남기기도 한다.

한반도의 국제적 긴장 속에서 과거 우리의 “협상”을 되돌아 보는 기회제공

최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이 위협받는 시점에서, 웹진 담談 9월호는 선인들의 일기 속에서 협상의 중요성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특히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발발한 7년 동안 수많은 협상의 자리가 있었고, 협상의 결과는 왕조의 운명과 백성의 삶에 참담한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참혹한 전쟁의 참화 속에서 각국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협상을 당대인들은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명나라 장수와 왜장의 휴전 조약, 그 현장에 조선은 없었다. 

이순신을 살린 정탁의 “피난일기”, 협상과정의 주체성을 논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8월, 선조의 요청에 따라 명나라 원군 5000명이 파견되어 평양성을 공격하였으나 참패한다. 이에 명은 심유경을 보내 50일 휴전을 제의한다. 휴전협상의 자리에는 명나라 장수와 왜장만 참석하였을 뿐, 조선은 없었다. 1592년 9월 전후, 명나라의 심유경(沈惟敬)과 왜장 풍신행장(豊臣行長: 고니시 유키나가)은 50일간 휴전에 합의하면서 추수철을 맞이한 조선 땅의 곡식 또한 건드리지 않기로 약속하였고, 이를 지키기 위해 10리를 한계로 금표를 세우고 조선군, 명군, 왜군 모두 들어가지 않기로 하였으나 왜적이 이를 일방적으로 어기고 선박 20척으로 대동강 합탄(蛤灘)까지 건너와 약탈을 자행하였다.

<천조장사전별도(天祖將士餞別圖) -한국국학진흥원&#160;소장>

조선군이 힘을 모아 방어하여 겨우 10리 밖으로 쫓아낼 수 있었지만 왜적을 끝까지 추적할 수 없었는데 명나라와 왜적이 쌍방 간에 체결한 50일간의 휴전 협정 때문이었다. 조선군이 빠진 채 진행한 약속이었으나 명군에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수동적인 방어만 하거나 앉아서 당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한 후 전장의 주도권을 명군에 넘긴 탓이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은 약포 정탁(鄭琢, 1526~1605)이 임란이 발발한 이후 4월 30일 선조의 몽진 때부터 9개월간 쓴 일기인『피난행록(避難行錄)』에 잘 나타나 있다. 정탁은 1592년 6월 분조(分曹)가 결정된 이후 광해군의 스승으로서 광해군과 함께 전국을 순회하며 고을 수령들을 독려하고 백성들을 위로하는 일을 맡았기에 전쟁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었다. 또한 정유재란(1597)이 발발하던 해에 이순신이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혔을 때, 1,298자에 달하는 장문의 상소를 올려 이순신을 살려낸 인물이기도 하다. 

<약포 정탁 영정>

정탁이 마음 통하는 명나라 장수에게서 듣게 된 쓴 소리 

무릇 위정자라면 국민을 최우선하는 판단과 전략을 세워야  

정탁의 또다른 전쟁일기인 『용만견문록(龍灣聞見錄)』에는 정탁이 명나라 장수 호환에게 쓴 소리를 듣게 되는 흥미로운 내용이 실려 있다. 1593년 9월 말, 임진왜란 중 파병되었던 명나라 군이 총병(摠兵) 유정(劉綎)의 일만 여 병사를 남겨두고 모두 떠나게 된 시점에, 정탁은 의주에서 명나라의 군사들을 배웅하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이 때에 명나라 군사(軍師-작전 참모)인 호환(胡煥)을 만나게 된다. 이들 두 사람은 한 눈에 서로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허심탄회하게 전쟁 중 정세를 논하였다. 정탁은 아직 소탕하지 못한 왜적들이 아직 남쪽 해안에 남아있는 상태였기에 병력 증원을 주장하게 된다. 호환은 이에 동의하면서도 한 가지 충고를 하였고, 정탁도 이를 경청하였다.

“무릇 외국으로부터의 모욕은 반드시 막아야 하고 내치에 힘을 쏟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왜적의 침입에도 조선의 백성들은 기꺼이 적의 신하가 되고 첩이 되었음을 기억하고 왜 그랬는지를 생각해봐야 하오. 고통에 젖은 백성들이 난리통에 살아남고자 하는 것에 죄를 물을 수는 없소. 오히려 군왕과 재상들이 속히 와신상담(臥薪嘗膽)하여 흩어진 민심을 모으고, 부상당하거나 죽은 이를 위로하며, 전쟁 후 어려움에 빠진 군졸과 백성들을 구휼함에 힘쓰고 함부로 세금을 걷는 것을 금하는 데까지 이르러서야, 그 할 일을 다 한 것이오.”

7년여의 전쟁과 강화협상을 통해 왜군은 철수하였으며, 조선은 중국, 일본과 사대교린의 외교질서를 회복하였다. 오랜 협상의 결과로 전쟁은 종식되고 조선은 왕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으나, 이후 조선은 지원군을 보내준 명나라와 만주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던 후금과 또다른 협상을 준비해야 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써내려간 일기류에서 창작소재 발굴

전쟁의 참혹한 현실과 당시 외교적 협상의 현장을 전하는 생생한 이야기 

과거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점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길 

조선시대 선비들이 일기장에 써내려간 “협상 이야기”는 어떻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일까?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조선시대 일기류 237권을 기반으로 총 3,670건의 창작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매월 한 가지의 주제를 선정하여 웹진 담談을 발행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일기류를 소재로 하지만 주제의 선정은 지금의 일상과 늘 맞닿아 있다.

스토리테마파크 운영 담당자인 한국국학진흥원 김민옥 박사는 “대부분의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다룬 역사콘텐츠들이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국가 중심의 기록물에 기반하여 창작되는데, 스토리테마파크에 소개된 개인의 일기자료에서 새로운 관점의 역사콘텐츠가 창작되기를 바라며, 이 시대에 반복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외교적 문제들을 선인의 일기를 통해 지혜롭게 해결해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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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9월호, “협상”을 소재로 발행한 내용이다. 

❚ 중국과의 외교/ 협상 

<임진왜란 시, 명군과의 협상>

○ 조선의 신하 정탁, 명나라의 군사 호환 - 서로 만나 전쟁의 정세를 논하다 (군사작전 협의)

정탁, 용만견문록,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LKH_0070

○ 지략가가 마주앉은 풍경 - 유성룡의 소매 속 지도와 명나라 장수가 부채에 써내려간 시

정탁, 피난행록, 1592-12-29 ~ 1593-01-05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LKH_0058

○ 조선에 남은 명나라 장수 척금, 사리를 위해 불합리한 강화를 맺은 다른 장수들을 비판하다

정탁, 용만견문록,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LKH_0069#self

<청과의 협정>

○ 오랑캐와 화약을 맺었단 소식을 듣다

김령, 계암일록, 1627-02-21 ~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SSK_3195

○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 청나라에 잡혀간 척화파 김상헌

미상, 법성일기,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KSH_0018

○ 청과 싸우는 것이 우선입니다! - 병자호란에 맞서는 원칙주의 성리학자 김상헌의 강한 주장

미상, 법성일기, 1636-12-17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KSH_0016

○ 국란에 임해 강경자주론을 주장한 김상헌, 타 무리로부터 지속적인 공격과 탄핵을 받다

미상, 법성일기, 1638-07-29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KSH_0017

❚ 일본과의 외교/ 협상 

○ 왜적 4인이 강화를 위해 함양에 이르다 (일본과의 강화회담)

정경운, 고대일록, 1594-04-29 ~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HIU_3062

○ 명황제가 전쟁을 독촉하다 (임진왜란 초기의 강화회담)

정경운, 고대일록, 1593-08-24 ~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HIU_3043

○ 명나라 장수와 왜장의 휴전 조약 - 조선은 없었다

정탁, 피난행록, 1592-09-02 ~ 1592-09-04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LKH_0100

○ 왕세자의 007 작전 명령 - 물품을 하사하며 스파이 작전을 지시하다 (전쟁 중 전략의 변경)

정탁, 피난행록, 1592-09-05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LKH_0045

○ 함경북도 회령에서 날아온 편지 - 두 명의 왕자가 왜적의 포로가 되다

정탁, 피난행록, 1592-09-05 ~ 1592-09-06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LKH_0041

❚ 기타 

○ 마부와 협상하여 속도를 내다

F.A. 매켄지, 한국의 비극,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HAR_5156

○ 대마도 유배 의병들, 고국에서 보내 온 의복을 수령하는 문제로 일본군과 담판하다

임병찬, 대마도일기,  1906-09-16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MIW_5092

○ 임병찬, 일본군 경비대대 측과 협상하여 첫날 무례했던 것에 대한 해명을 받다

임병찬, 대마도일기,  1906-07-11 ~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MIW_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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