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 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 (조지훈)

그날 너희 오래 참고 참았던
義憤(의분)이 터져
努濤(노도)와 같이 거리로 거리로
몰려가던 그때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硏究室(연구실)
창턱에 기대 앉아
먼 산을 넋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午後二時(오후2시) 거리에 나갔다가
비로소 나는 너희들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물결이
議事堂(의사당) 앞에 넘치고 있음을 알고
늬들 옆에서 우리는 너희의 불타는
눈망울을 보고 있었다.
사실을 말하면 나는 그날 비로소
너희들이 갑작이 이뻐져서 죽겠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까닭이냐.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길은 무거웠다.
나의 두 뺨을 적시는 아 그것은 뉘우침이었다.
늬들 가슴속에 그렇게
뜨거운 불덩어리를 간직한 줄 알았더라면
우린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氣慨(기개)가 없다고
병든 先輩(선배)의 썩은 風習(풍습)을 배워
不義(불의)에 팔린다고
사람이란 늙으면 썩느니라 나도 썩어가고 있는 사람
늬들도 자칫하면 썩는다고...

그것은 정말 우리가 몰랐던 탓이다.
나라를 빼앗긴 땅에 자라 악을 쓰며 지켜왔어도
우리 머리에는 어쩔 수 없는
병든 그림자가 어리어 있는 것을
너의 그 淸明(청명)한 하늘 같은 머리를
나무램 했더란 말이다.

나라를 찾고 侵略(침략)을 막아내고
그러한 自主(자주)의 피가 흘러서
젖은 땅에서 자란 늬들이 아니냐.
그 雨露(우로)에 잔뼈가 굵고 눈이 트인 늬들이 어찌
民族萬代(민족만대)의 脈脈(맥맥)한
바른 핏줄을 모를 리가 있었겠느냐.

사랑하는 학생들아 늬들은
너희 스승을 얼마나 원망했느냐.
現實(현실)에 눈감은 學問(학문)으로
보따리장수나 한다고
너희들이 우리를 민망히 여겼을 것을 생각하면
정말 우린 얼굴이 뜨거워진다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른다.

사실은 너희 先輩(선배)가 약했던 것이다
氣慨(기개)가 없었던 것이다.
每事(매사)에 쉬쉬하며 바로 말 한마디 못한것
그 늙은 탓 純粹(순수)의 탓 超然(초연)의 탓에
어찌 苛責(가책)이 없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너희를 꾸짖고 욕한 것은
너희를 경계하는 마음이었다.
우리처럼 되지 말라고
너희를 기대함이었다 우리가 못할 일을 할 사람은
늬들 뿐이라고

사랑하는 학생들아
가르치기는 옳게 가르치고
行하기는 옳게 行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스승의 따귀를 때리는 것 쯤은 보통인
그 무지한 깡패떼에게 정치를 맡겨 놓고
원통하고 억울한 것은 늬들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럴 줄 알았더면 정말
우리는 너희에게 그렇게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가르칠 게 없는 훈장이니
선비의 정신이나마 깨우쳐 주겠다던 것이
이제 생각하면 정말 쑥스러운 일이었구나.
사랑하는 젊은이들아
붉은 피를 쏟으며 빛을 불러 놓고
어둠 속에 먼저 간 수 닭의 넋들아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늬들의 공을 온 겨레가 안다.

하늘도 敬虔(경건)히 고개 숙일 너희 빛나는 죽음 앞에
해마다 해마다 더 많은 꽃이 피리라.

아 自由(자유)를 正義(정의)를
眞理(진리)를 念願(염원)하던
늬들 마음의 고향 여기에
이제 모두다 모였구나.
우리 永遠(영원)히 늬들과 함께 있으리라.

(1960. 4. 20)

조지훈(본명 동탁)
▲ 조지훈(본명 동탁)

이 시는 조지훈 선생이 고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60년 4.19 혁명을 지켜보며

제자들에게 바치는 헌시이다.

4월 20일에 쓰셨고,

1960년 5월 3일자 <고대신문> 제 238호에 실렸다. 

대표작: 승무(​僧舞) 

[출처]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ㅡ 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凡然 李東炯(고대 박사 재료72)|작성자 CHAUM 차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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