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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근대화 대통령-박정희, 혁명1,2 / 지은이 김용삼 기자
대한민국 근대화 대통령-박정희, 혁명1,2 / 지은이 김용삼 기자
  • 조충열 기자
  • 승인 2019.06.03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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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김용삼 지음
▲ 혁명1,2 / 김용삼 지음

안동데일리 서울=조충열 기자) 오늘의 책 : 대한민국 근대화 대통령 박정희 혁명 1‧2권(세트) | 지은이 김용삼

■ 분야 국내도서>정치․사회>정치․외교 | 판형 148*210 mm | 페이지 각 권 416쪽 | 제본 무선

가격 각 권 18,000원 | 발행일 2019년 5월 16일

ISBN 978-89-91622-66-1 (04300) (세트)

ISBN 978-89-91622-67-8 (04300) (1권)

ISBN 978-89-91622-68-5 (04300) (2권)

주 소: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 58 오스카빌딩 4층
전 화: 02-962-9154 팩 스: 02-962-9156

■ 책 소개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혁명가의 모습을 만나다!

‘쿠데타’로 역사무대에 등장하여

‘혁명’으로 삶을 마무리한 근대화 대통령 박정희 18년의 기록

이 책은 대한민국 근대화란 산업혁명을 일궈낸 한 위대한 혁명가에 대한 가장 정밀한 보고서다. 배고픈 국민들에게 밥을 먹이고, 이 나라를 우리 힘으로 지키기 위해 무능과 부패에 맞서 목숨을 걸었던 혁명가 박정희. 그런 그의 소망은 소박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서민 사회가 바탕이 된 ‘자주독립된 한국의 창건’. 이 책은 박정희가 귀와 입이 아닌, 다리와 눈으로 확인하고 감독하며 마침내 어느 누구도 실행하지 못했던 국가 근대화를 성공시켜 물적 토대와 중산층 형성에 성공한 과정이 근대화에 동참했던 수많은 이들의 증언과 함께 수록돼 있다. 자주국방과 자립경제를 통한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박정희가 일생에 세 번의 다단계 쿠데타를 감행했다는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의 키워드이자 핵심이다. 그리고 그 세 번의 쿠데타의 결과는 혁명이었다.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박정희는 ‘국민의 인기’나 지지율에 일희일비하는 ‘연예인 대통령’이 아닐 뿐 아니라, 포퓰리즘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수많은 사람에게 박수를 받기 위해 “가진 것 나눠 먹으며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비난을 각오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사회”를 지향했다. 이것이 박정희가 집권 초부터 서거할 때까지 일관되게 추구했던 지도자로서의 철학이었다.

한국군 월남 파병, 한일 국교 정상화, 향토예비군 창설, 고속도로·제철소 건설 등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늘리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역사적 과업이었지만, 한편에선 국민들에겐 지지리도 인기 없는 정책이었다. 국교 정상화 대가로 일본이 제공한 자금을 일제하에서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 것이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한 제철소와 고속도로, 소양강댐 건설에 70퍼센트의 자금을 투입했다. 포퓰리스트 정치인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통 큰 결정’이었다.

위대한 지도자로

박정희 재임 기간 18년은 경제학자 좌승희의 표현을 빌린다면 마차와 지게가 주류였던 농업사회에서 자동차와 비행기가 주류를 이루는 공업사회로 나라의 기틀이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한 시대의 지도자가 국리민복을 위해 몸 바쳐 일했다고 해서 그 지도자가 반드시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전후(戰後) 프랑스의 새 역사를 쓴 드골 대통령도 철모르는 국민들의 비판에 어지간히 속을 썩였는지 “프랑스 국민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풀만 내려다보는 소떼”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인간은 신(神)이 아니기에 업적을 쌓는 동안 수많은 실패와 실수, 잘못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 그 실수와 실패, 잘못을 뛰어넘어 성공의 길로 나갔으니 ‘위대한 지도자’라는 평을 듣는 것이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나라를 빛낸 인물들의 생애에서 성공한 사례, 위대한 점, 긍정적 이미지, 본받아야 할 점 등을 찾아내 그 위에 스토리텔링이라는 멋진 의상을 입혀 ‘성공의 DNA’를 보급하는 데 열을 올린다.

반대로 우리 사회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라도 발가벗긴 다음 실패와 실수, 잘못한 부분만을 집요하게 캐내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총동원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 인물에 대한 모욕 주기, 인생 더럽히기, 깎아내리기, 침 뱉기 등 ‘저주의 DNA’가 확대 재생산되어 자해와 자기모멸, 자학의 왜곡·폄하·날조된 현대사 조작이 범국가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침내 명예혁명을 증명하다

5·16에 가담했던 혁명군 장교의 40퍼센트 정도가 빈농(貧農) 집안이나 월남자 출신이었다. 이들은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고, 기술을 익히도록 유도하여 전 국민 대다수의 중산층화에 성공했다. 이 점에서 5·16은 단순한 군사정변이 아니라 ‘양반의 나라’를 뒤엎고 ‘평민과 기술자들의 나라’가 출발하는 명예혁명이었음을 증명한다.

박정희는 혁명적 발상이 아니면 불가능했던 국가 근대화를 정치인으로서의 ‘통치행위’가 아니라, 혁명가적인 ‘건설’로 쟁취해 냈다. 그렇게 얻은 성취를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고르게 나눠줌으로써 혁명의 대의를 성공시켰다. 그러나 그 대가로 박정희는 지금도 ‘민주주의를 파탄 낸 독재자’로서 하루빨리 우리 사회에서 ‘청산되어야 할 세력’으로 몰려 있다.

출판사 서평

‘기적’이기 전에 수수께끼에 가까운

경제발전 과정을 추진한 강력한 리더

박정희의 통찰과 전략이 담긴 단 하나의 기록!

한정된 국력으로 국가안보, 경제 근대화, 자유 민주정치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쫓아야 했던 박정희 집권 기간 18년. 그는 세 마리의 토끼를 쫓겠다고 허둥대는 대신 강력한 결단성과 신념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신화를 써 내려갔다. 서구의 지식인들이 주장하고 국제기구가 앞장서 설파한 경제발전 공식을 ‘거꾸로’ 하며 첨예한 국제관계 속을 헤쳐 나온 박정희. ‘거꾸로’ 공식과 공언한 자신의 은퇴시기 ‘1981년’. 이 책에는 ‘거꾸로’와 ‘1981년’에 담긴 그의 통찰과 전략 속에 박정희 혁명이 갖는 세계사적 의미가 들어있다. 자세히 보아야 제대로 보이는 위대한 리더 박정희를 마주하게 될 책이다.

■ 차례

<1권>

‧ 머리말

01 교사에서 군인으로

긴 칼을 차고 싶었던 소년, 군인의 길을 가다

02 만주군 장교가 되다

패전으로 무장해제, 초라한 귀국길

03 생사(生死)의 기로에 서다

이승만 대통령, 사형 선고받은 박정희를 구하다

04 현실정치에 눈을 뜨다

이승만 타도 위한 쿠데타 계획 모의

05 세 차례에 걸친 쿠데타 모의

“가자. 가다 죽더라도 가자”

06 5·16 운명의 그날

“여보 김 장군, 그대로 밀어”

07 쿠데타 성공하다

권력은 둘로 나눌 수 없다

08 국가운영의 질을 높이다

위로부터의 혁명

09 국정운영의 달인(達人)

현장 행정, 확인 또 확인…

10 한일 국교 정상화

‘제2의 이완용’이라는 욕을 먹더라도…

11 제2의 군사쿠데타 감행하다

일본과의 수교 연기했다면?

12 월남전과 대한민국

“미국이여, 월남을 도와야 한다”

13 한국군 월남에 파병하다

파병 협상에서 미국 대통령을 들었다 놨다…

‧ 참고문헌

<2권>

‧ 머리말

01 새마을운동 시동 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02 통합적 개발방식의 도입

행정부서는 모두 참여하라

03 고슴도치 이론

“자기 집에 불이 나면 그 집 식구들이 먼저 불을 꺼야”

04 농업이 아니라 공업이다

제철소를 건설하고 자동차를 개발하라

05 닉슨 독트린,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

“안보 위해서라면 모든 것 다 바친다”

06 박정희와 미국, 그리고 북한

우리에게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07 모든 길은 중화학공업화로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 최고의 정책

08 국산 무기를 개발하라

“총알이 안 나가도 좋으니 일단 만들어 보자”

09 마키아벨리스르의 정치학

분할하여 통치하라

10 암호명 ‘890 계획’

극비 지령, “핵무기를 개발하라”

11 핵개발 실패, 박정희의 죽음

미완으로 끝난 박정희 혁명

12 에필로그

‘박정희 혁명’은 자주국방·자립경제 건설

참고문헌

■ 책 속으로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다.

박정희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청렴했으며 열심히 일했다.

그는 국가에 일생을 바친 리더였다.”

- 에즈라 보겔(하버드대 명예교수)

1. 첫 번째 쿠데타

우리는 정권이 탐나서 궐기하려는 게 아니야. 우리의 목표는 나라의 근본을 개혁하고 썩어빠진 병폐를 뜯어고치려고 일어서는 건데 혁명이면 어떻고 쿠데타면 어떤가. 그동안의 정권이 해내지 못한 국가 근대화를 달성하면 평가는 후세의 역사가들이 내려줄 거요.(1권 본문 10쪽)

4·19가 일어나 이승만 정부가 붕괴되고 그 해 8월 23일 내각책임제 하에서 윤보선 대통령-장면 정부가 출범했으나 실망의 연속이었다. 당시 정치인과 국민들은 만악(萬惡)의 근원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데 의견이 일치하여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를 대통령중심제에서 의원내각제로 바꾸었다.

그런데 진정한 민주주의는 단지 권력구조만 바꾼다고 해서 근본 문제, 즉 국민들이 배불리 밥을 먹고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는 시스템이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초등학생들마저 데모에 나서고, 심지어 데모를 진압해야 할 경찰관들마저 집단 시위에 나설 정도로 이 나라는 ‘시위 공화국’으로 돌변했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집단이 부재한 상황에서 단연 돋보이는 파워 폴리틱스 집단은 군부였다. 60만 대군이라는 양적 팽창도 그렇거니와 미국식 선진교육을 받고, 대규모 인력들이 미국 유학을 통해 체득한 근대화된 과학적 지식과 행정능력, 훈련된 리더십은 국내의 다른 어느 집단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선진화된 파워 엘리트 그룹이었다. (1권 본문 129쪽)

- <현실정치에 눈을 뜨다> 중에서

박정희 정권과 대립각을 세웠던 함석헌은 잡지 『사상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또다시 혁명해야지. 혁명밖에 다른 길 없다. 뱃속에 병이 들었으면… 하다가 죽는대도 배를 가르고 수술해야지 그 길밖에 길이 없다.’(1권 본문140쪽)

우리는 정권이 탐나서 궐기하려는 게 아니야. 우리의 목표는 나라의 근본을 개혁하고 썩어빠진 병폐를 뜯어고치려고 일어서는 건데 혁명이면 어떻고 쿠데타면 어떤가. 그동안의 정권이 해내지 못한 국가발전을 달성하면 평가는 후세의 역사가들이 내려줄 거야.(1권 본문 145쪽)

스칼라피노 교수는 ‘콜론 보고서’를 통해 한국에서 군사쿠데타 가능성을 예고했으나 “당분간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기술함으로써 한국의 청년 장교단을 격렬하게 자극했다. 어쩌면 스칼라피노의 이 모멸적 표현이 한국의 소장파 장교들을 쿠데타로 나서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1권 본문 154쪽)

- <세 차례에 걸친 쿠데타 모의> 중에서

2. 두 번째 쿠데타

박정희 정권 출범 후 한일 국교 정상화는 세 가지 현실적 이유에서 제기됐다. 첫째, 한국의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 확보와 안보 차원. 둘째, 미국의 글로벌 냉전전략 추진 차원. 셋째, 일본의 경제적 필요 차원에서 극히 긴요한 현실적 과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1권 본문 321쪽)

대중 정치인으로서 국민의 지지도나 인기에 연연했다면 박정희는 한일협상을 포기하거나 연기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박정희는 불법 시위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하고 정치인으로서의 대중적 인기 대신 혁명가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제2의 5·16을 감행하는 심정으로 6월 3일 오후 10시,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1권 본문 346쪽)

박정희를 비롯한 당시 국가 지도부는 청구권자금을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혜택이 돌아가고, 다음 세대 후손들에게까지 기념할 만한 사업을 넘겨줄 수 있도록 ‘의미 있는 투자’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과 원칙을 수립했다. 그 결과 1966년부터 1975년까지의 10년간 청구권자금의 집행실적을 종합 정리하여 기록을 남긴 것이 『청구권자금 백서』(1976년 12월)다. 이 백서에 의하면 포항제철 건설에 무상 3억 달러 중 3080만 달러(무상 자금의 10.8퍼센트), 유상 2억 달러 중 8868만 달러(유상 자금의 44.3퍼센트) 등 총 1억 1948만 달러를 투자했다. 포항제철 건설이야말로 1970년대 한국의 공업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적의 역사다. 특히 1970년대 중화학공업 건설 과정에서 공작기계공업, 산업기계공업은 물론 자동차·선박, 전자공업에서 요구되는 소재와 중간재의 자체 공급이 가능해짐으로써 한국의 공업화 수준을 크게 업그레이드하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한국 산업화의 대동맥 역할을 했던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도 일본의 청구권자금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또 전 국토 종합개발사업의 상징이랄 수 있는 소양강댐 건설도 총 소요자금 2161만 3,000달러 전액을 청구권자금으로 충당했다. 공사기간만 무려 6년 반(1967년 4월⁓1973년 10월)이 걸린 아시아 최대, 세계 4위 규모의 대규모 토목공사로 인해 한강 유역 일대의 홍수 조절이 가능해졌고 한수해(旱水害) 예방, 그리고 생활용수와 농공업용수 문제를 일거에 해결했다. (중략) 박정희는 전 국민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자금을 전 세계의 전문가나 국내의 야당, 학생들이 그토록 반대했던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거의 70퍼센트 가깝게 투입했다. 인기를 먹고 사는 정치인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국가의 백년대계를 앞세워 수많은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호기롭게 투자할 수 있었을까? (1권 본문 357쪽)

- <한일 국교 정상화> 중에서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은 안보 차원의 접근법이었지만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도 막대했다. 한국 기업들이 월남에 납품할 기회가 주어졌고, 한국 용역회사들이 한국군과 미군 지원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으며, 한국의 건설 회사들도 각종 건설공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힘입어 당시 한국 철강수출의 94퍼센트, 수송 장비 수출의 52퍼센트가 월남이었다. (1권 본문 405쪽)

한국의 월남전 참전으로 한미관계가 긴밀해지면서 미국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차관을 대폭 늘렸고, 한국 제품에 대해 시장을 개방했다. 1964년 한국의 총 수출에서 대미 수출의 비중이 30퍼센트를 돌파했고, 1968년에는 무려 52퍼센트에 달했다. (1권 본문 407쪽)

- <한국군 월남에 파병하다> 중에서

국민에게 세 끼 밥도 제대로 못 먹이는 지도자는 참다운 지도자가 아니오. 여러분들은 어떤 정책이나 법률을 입안할 때 반드시 국민에게 밥을 먹일 수 있는 방법론과 연관을 시켜서 발상을 해야 합니다.(2권 본문 29쪽)

스스로 노력하고 협동하는 마을은 적극적으로 돕되, 노력하지 않거나 협동하지 않는 마을은 돕지 않겠다. 이 길만이 수 천 년 내려온 의타심을 뿌리 뽑고 자조하는 정신을 자각시키는 길이다. 이와 같은 방침으로 설령 선거 때 표를 못 얻어 져서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어도 이 신상필벌의 원칙만은 바꾸지 않겠다.(2권 본문 32쪽)

- <새마을운동 시동 걸다> 중에서

타국을 침략할 정도의 군사력까지는 필요하지 않지만, 적국이 우리를 먹으려고 드는 경우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공격 자세를 취할 정도의 자위력은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2권 본문 69쪽)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어제의 적국을 오늘의 우방으로 삼고, 피도 눈물도 없는 적자생존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냉혹한 생존경쟁의 시대에 있어서는 힘없는 민족은 세계무대에서 영원히 낙오되고 만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중략) 이 시련을 극복하는 데는 우방의 지원이나 협력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의 굳센 결의와 분발과 단결이며 피와 땀을 흘려가며 국력을 기르는 일입니다.(2권 본문 98쪽)

- <고슴도치 이론> 중에서

1973년 1월에 선포된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한국이 처한 국가 안보적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월남전의 수렁에 빠진 미국은 닉슨 독트린 발표로 난관에서 빠져나오고자 했다. 닉슨 독트린은 주한미군 철수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북한 공산집단의 거듭된 남침 위협에 노출되어 있던 한국은 자주국방을 위해 방위산업 건설이 절실했다.(2권 본문 139쪽)

- <농업이 아니라 공업이다> 중에서

3. 세 번째 쿠데타

박정희는 고민에 빠졌다. 중화학공업 육성에는 10년 이상의 세월과 천문학적인 투자가 요구되었다. 그런데 자신의 임기는 3선 개헌을 통해 임기를 4년 더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1975년까지로, 3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비상한 정치적 결단이 요구됐다. 1972년 10월 17일 저녁 7시, 갑자기 정규방송이 중단되고 긴급뉴스라는 자막이 떴다.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동시에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의 정치활동을 정지하는 등 헌법의 일부 효력이 정지되며, 효력이 정지된 헌법조항 기능을 비상국무회의가 수행한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담화문이 발표됐다. 유신헌법 골격은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 국회 해산권을 가지며, 대통령의 임기는 6년에 연임할 수 있다. 대통령 선출제도는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하는 직선제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출하는 간선제로 바뀌었다. 3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틀이 무너지고 입법·사법·행정의 3권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것이다.

사실상 10월 유신은 일종의 준(準)전시 동원 체제였는데, 박정희가 이를 선포한 배경에는 방위산업과 중화학공업 육성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숨어 있다.(2권 본문 181쪽)

- <닉슨 독트린,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 중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메모에서 국산 미사일 개발의 세 가지 기본방침을 제시했다.

첫째, 독자적 개발체제를 확립할 것.

둘째, 지대지 미사일을 개발하되, 1단계는 1975년 이전 국산화를 목표로 할 것.

셋째, 기술 개발을 위해 국내외 기술진을 총동원하고, 외국 전문가도 초청하며, 외국과 기술 제휴를 할 것.

이 비밀 프로젝트는 ‘항공공업 육성계획’이라는 위장 명칭으로 포장됐고, 후에는 ‘백곰’이라 불렸다.(2권 본문 282쪽) - <국산 무기를 개발하라> 중에서

박정희는 1972년 초 김정렴 비서실장과 국산무기 개발의 일등공신 오원철 경제수석을 집무실로 불러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핵무기가 필요하다. 기술을 확보하도록 하라”고 극비리에 지시해 1970년대 말경에는 이 핵무기 프로젝트가 거의 완성단계에까지 가 있었다.(2권 본문 327쪽)

미국은 한국의 핵 보유가 동북아지역의 안정을 해치는 중대 요소가 될 것으로 보고 집요하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원자력연구소, 국방과학연구소, 대전기계창 같은 현장은 물론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과학기술처, 재무부 등 각 기관의 부서장들에겐 주한 미국대사관 요원과 CIA 요원들이 밀착감시를 하고 명시적으로 핵개발을 중지하라고 압박을 가했다.(2권 본문 349쪽)

- <암호명 ‘890’계획> 중에서

4. 그리고 ‘혁명’

미국은 박정희의 핵 개발을 감시하기 위해 주한 미국대사관에 과학무관을 파견했다. (중략)

“한국이 망하지 않으려면 핵 개발을 포기하라.”(2권 본문 374쪽)

- <핵개발 실패, 박정희의 죽음> 중에서

박정희 정권은 비록 민주화 운동을 억압했지만 경제발전을 통해서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한국 다원주의 근간이 되는 중산층을 창출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에 크게 기여했다.(2권 본문 409쪽)

- <에필로그> 중에서

■ 지은이 소개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지은이 김용삼

조선일보 기자 시절, 국가 근대화에 동참했던 분들의 활약을 밀착 취재했다. 이 책은 학창 시절까지 박정희에 대한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가 국가 근대화에 동참했던 분들의 고견을 듣고, 인터뷰를 하면서 뒤늦게 박정희의 진면목을 발견한 것에 대한 참회록이다.

대전고, 중앙대 문예창작과,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조선일보 기자, 시사월간지 <월간조선> 편집장, 경기도 대변인, 경기콘텐츠진흥원 감사를 역임했다. <월간조선> 기자로 활동하며 50여 개국 현지 취재를 통해 전 ․ 현직 국가원수 4명을 특종 인터뷰했다. 또한 황장엽 망명사건 특종보도로 제1회 대한민국 언론상 수상, 2008년 해양사상 보급에 공헌한 공로로 장보고대상을 수상했다. 2013년 『이승만과 기업가 시대』로 전경련 시장경제대상 우수상, 2015년 『대한민국 건국의 기획자들』로 전경련 시장경제대상을 수상(공동)했다.

주요 저서로는 『이승만과 기업가 시대』(북앤피플), 『이승만의 네이션 빌딩』(북앤피플), 『이승만 깨기』(공저 ․ 백년동안), 『시간을 달리는 남자』(공저 ․ 백년동안), 『한강의 기적과 기업가 정신』(프리이코노미스쿨), 『재미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전3권 ․ 월간조선), 『조선 5백년 역사대탐험』(동방미디어), 『대구 10월 폭동/제주 4․3사건/여․순 반란사건』(백년동안), 『박정희의 옆얼굴』(기파랑), 『김정은의 할아버지 진실을 말하다』(미래사), 『김일성 진실을 말하다』(북앤피플), 『황교안 2017』(민초커뮤니케이션) 등이 있고, 이승만 대통령이 감옥에서 쓴 『청일전기』를 해제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기획실장을 거쳐 현재는 <이승만 학당> 교사, <펜앤드마이크 정규재 TV> 대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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