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 장례식에 보낸 박정희 대통령의 조사(弔詞)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건국대통령
▲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건국대통령

오는 2018년 7월 19일은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대통령이 소천한지 53주기가 된다. 이승만 박사는 1965년 7월 19일 0시35분 하와이 마우날라니 양노원병원에서 운명하였다. 

남긴 유산은 평생 읽던 성경 한권뿐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유해는 전 주한미사령관 벤프리트 장군이 마련한 특별기로 한국에 이송된 후, 가족장으로 장례식을 거행했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아래와 같은 조사(弔詞)를 지어 정일권 국무총리로 하여금 대독케 했다.

「조국독립운동의 원훈이요, 초대 건국대통령이신 고 우남 이승만박사 영전에 정성껏 분향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삼가 조의를 드립니다. 돌아보건대 한마디로 끈어 '파란만장의 기구한 일생'이였습니다.

과연 역사를 헤치고 나타나, 자기 몸소 역사를 짓고 또 역사위에 숱한 교훈을 남기고 가신, 조국 근대화의 상징적 존재로서 박사께서는 이제 모든 영욕의 진세인연을 끈어버리고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생전의 일동일정이 범인용부와 같지 아니하여, 실로 조국의 명암과 민족의 안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던 세기적 인물이었으므로, 박사의 최후조차 우리들에게 주는 충격이 이같이 심대한 것임을 외면할 길이 없습니다.

일찍이 대한제국의 국운이 기울어지는 것을 보고 용감히 뛰쳐나서 조국의 개화와 반제국주의 투쟁을 감행하던 날, 몸을 철쇄로 묶고 발길을 형극으로 가로막던 것은, 오히려 선구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의 특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일제의 침략에 쫒겨 해외의 망명생활 30여 성상에, 문자 그대로 혹은 바람을 씹고 이슬위에 잠자면서 동분서주로 쉴날이 없었고, 또 혹은 섶위에 누워 쓸개를 씹으면서 조국광복을 맹세하고 원하던 것도, 그 또한 혁명아만이 맛볼수있는 명예로운 향연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70노구로 광복된 조국에 돌아와 그나마 분단된 국토위에서 안으론 사상의 혼란과 밖으로는 국제의 알력속에서도 만난을 헤치고 새나라를 세워, 민족과 국가의 방향을 제시하여 민주한국독립사에 제1장을 장식한 것이야말로, 오직 건국인만이 기록할 수 있는 불후의 금문자였던 것입니다.  

이같이 박사께서는 선구자로, 혁명아로, 건국인으로 다만 조국의 개화, 조국의 독립, 또 조국의 발전만을 위하여 온갖 노역을 즐거움으로 여겼고, 또 헌신의 성과를 스스로 거두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평생 견지하신 민족정기에 입각하여 항일반공의 뚜렷한 정치노선을 신조로 부동자세를 취해왔거니와, 그것은 어디까지나 박사의 국가적 경륜이였고, 또 그중에서도 평화선의 설정, 반공포로의 석방등은 세계를 놀라게 한 정치적 과단력의 역사적 발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집권 12년의 종말에 이르러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이른바 정치적 과오로 인하여 살아서 역사의 심판을 받았던 쓰라린 기록이야말로 박사의 현명을 어지럽게한 간신배들의 가증한 소치였을망정 구경에는 박사의 일생에 씻지못할 오점이 되였던 것을 통탄해 마지 못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이자리에서 다시한번 헤아려보면, 그것이 결코 박사의 민족을 위한 생애중에 어느 일부분일 망정 전체가 아닌것이요, 또 외부적인 실정 책임으로서 박사의 내면적인 애국정신을 말살하지는 못할것이라 생각하며,  또 일찍히 말씀하신 뭉치면 살고 헤치면 죽는다는 귀국일성은  오늘도 이 나라 국민들에게 들려주시는 최후의 유언과 같이 받아들여, 민족사활의 잠언을 삼으려는 것입니다.

어쨌던 박사께서는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세기적 비극의 주인공이였던 것을 헤아리면, 충심으로 뜨거운 눈물을 같이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만,  그보다는 조국의 헌정사에 최후의 십자가를 지고가시는 “어린양”의 존재가 되심으로써,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위인이란 거룩한 명예를 되살리고, 민족적으로는 다시 이땅에 4.19나 5.16 같은 역사적 고민이 나타나지 않도록 보살피시어, 자주독립정신과 반공투쟁을 위한 선구자로서 길이 길잡이가 되여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다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박사로 하여금 그토록 오매불망하시던 고국땅에서 임종하실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드리지 못하고 이역의 쓸쓸한 해변에서 고독하게 최후를 마치게 한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또 박사에 대한 영원한 경의로, 그 유택을 국립묘지에서 가장 길지를 택하여 유해를 안장해 드리고자 합니다.  생전에 손수 창군하시고 또 그들로서 공산침략을 격파하여 세계에 이름을 날렸던 바로 그 국군장병들의 영령들과 함께,  길이 이 나라의 수호신되셔서, 민족의 다난한 앞길을 열어주시는 힘이 되실 것을 믿고, 삼가 두 손을 모아 명복을 비는 동시에 유가족 위에 신의 가호가 같이 하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사업회 미주총회장 손영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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