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철/JBC의 까는 세상
▲ 진행 정병철/유튜브 'JBC의 까는 세상'에서 캡쳐

“정 선생님, 이번 지방 선거 김문수를 지지 해야 합니까? 태극기 후보를 지지해야 합니까?”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저녁 지인들과 한잔 술을 마시다가 물어보시는 분, TV를 보시다가 답답하다면서 물어보시는 분, 남편과 이야기 중 물어보시는 분…

이 같은 질문을 하는 이유와 사연이 다르지만 실은 똑같다.

나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상대에게 다시 묻는다.

“선생님은 태극기 집회 참석 하시죠”

“물론요… 저, 요즘 잘 안 나가지만 예전에 매주 나갔심더”

김문수를 지지하고 싶은 데, 이제까지 본인은 태극기 쪽에 선 입장이라 신념과 양심 사이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이다.

태극기 집회를 나가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태극기 후보를 지지하는 게 맞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오자. 태극기 후보가 대중 인지도가 없다. 이는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낯음을 뜻한다. 자칫 나의 표가 ‘사표’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김문수
▲ 서울시장 후보(자유한국당)로 나선 김문수 前 경기도지사가 손을 들고 있다

전화를 끊을 때 즈음이면, 본심에 가까운 말을 드러낸다.

“저는 김문수를 지지하고 싶은 데 그 분이 자한당 소속이라…”

김문수를 지지한다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자한당 소속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유는 한결같다. 자한당 소속 의원 중 김무성, 김성태 62명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고. 이들이 당시 새누리당을 탈당 한 후 바른정당으로 갔다. 홍준표 자한당 대표가 이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였다. 박 전 대통령을 출당시켰다. 배신무리다.

태극기 세력들은 자한당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 그 사이에는 홍준표 대표가 차지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홍 대표를 닥치고 지지 했었는데 그가 배신했다는 것이다. 최근 홍 대표는 태극기 세력들을 ‘박근혜 팔이 극우로 매도’ 하면서 분노까지 더해졌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들은 내심 김문수 지지를 ‘커밍아웃’ 한 것이다. 나에게 전화를 걸어 묻는 것은 커밍아웃 공감자가 되어 달라는 것이 아닐까.

김문수를 지지 하느냐 마느냐. 이것은 실증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소신적 선택이다.  좌우 새상이 되다 보니, 정치적 일상에서 자신의 신념속에 싹튼 선택을 한다는 게 갈수록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

기성 정치인 중 김문수 만큼 태극기 세력들에게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 없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정치인들이 입 다물고 있을 때 그는 태극기를 들고 아스팔트로 나온 몇 안 되는 정치인 중 한명이었다.

이는 그렇기 때문 지지한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지지 못한다는 미세한 차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문수는 태극기 세력들의 정통성에도 부합되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문수는 탄핵 세력들이 있는 자한당의 후보이기에 지지하기가 곤란하다.

김문수가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면, 태극기 지지 정당 대표로, 대한애국당 대표로 서울시장에 출마했으면 좋지 않았겠는가 아쉬움을 토로한다.

명제는 간단하다. 김문수를 지지하자니, 애국당이 울고, 애국당을 지지하자니 김문수가 울고.

과거의 선거판과 달리 현재의 선거판은 신념과 사상의 대립장이다. 각자가 느끼고 판단하는 자신속의 이데올로기의적 딜레마는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속된 말도, 진실과 애국심의 무게로 선택 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애국심의 무게를 측정했을 때 누구의 무게가 더 나가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진다고? 애국심을 뭘로 잰단 말인가. 체중기로 재는 것일까.

논쟁과 대립으로 뽑자고? 서울시장 자리가 대한민국 대통령을 뽑는 자리도 아닌데, 이를 두고 보수 우파끼지 논쟁을 벌이는 것이 과연, 바람직 한가?

정치란 것은 결국 현실주의가 이상으로 가득한 낭만주의를 이기는 법이다. 자한당 김문수가 현실이라면, 태극기 후보는 이상일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현실주의 타협주의 기회주의자 승리로 이어지더라.

나는 이런 세상이 싫다. 이것은 현실을 위해 이상을 저버리는 것과 같다. 역설적이게도 현실을 위해 이상은 다음 카드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이상은 현실에 종속되어도 좋다는 도구주의적 논리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없다. 그 갈등을 공개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성숙된 이상으로 가는 올바른 방향이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매일 그리고 거의 매순간 마다 결단과 용기를 요구한다. 순간 순간 갈등에서 벗어나야 하고,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하고, 매일의 패배를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날, 우파는 스스로 결단과 당당한 선택을 못하고 벽 뒤에 숨어서 도식주의적인 사고에 안주한 것이 아닌가. 알량한 사명감으로 얼버무린 내 도식주의가 깨지려면 전혀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

결국 옳고 그름, 맞고 틀리고를 떠나 결국 문제는 초점을 잡아 주제를 좁히는 거다. 지금 대한민국은 좌경화로 흐르고 있다. 문재인 주사파 정권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을 아웃시키기 위한 ‘반문 세력’들이 뭉쳐야 한다. 이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강 전선을 지켰을 경우 문재인의 반대한국민적 행위를 저지할 수 있다.

자한당이든, 애국당이든, 태극기 다른 집단이든 이것을 부인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선거판은 냉정하게는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없고, 또 그 사이에서 공존할 수도 없다. 오직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애국당과 태극기 세력들의 자한당 지지는 결국 민주주의를 질식시킨다는 날카로운 칼날 비판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자한당 보다 애국당과 태극기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된다. 그러나 선택을 할 경우 더이상 이런 논쟁을 하기 싫어 자신을 속인다. 이처럼 선택과 지지를 놓고 각자 품고 있는 진실과 거짓의 과장의 경계는 늘 애매하다.

태극기 우파들은 남들 앞에선 자한당 보다 태극기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중에 이런 신념과 달리 실은 자한당을 지지했을 경우 이를 뒤늦게 안 사람들은 또 다른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우파들은 이런 선택과 지지 사이에서 늘 긴장과 날카로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선택의 평범성’과 ‘지지의 합리성’. 그 생각의 대전제는 문재인 아웃을 위한 협동체제 구축이다. 문재인을 아웃 시키는 대명제라는 참담한 현실과 맞닥뜨리면 자신도 모르게 슬금 슬금 자아의 포지션으로 이동할 것이다.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상상력이 절실하다. 이에 대한 논쟁은 서로 다른 신념과 상상력의 충돌이다. 사실, 선택은 다 아는 것이지만 우리는 자아적 거짓말로 머리속은 복잡하다.

그러나 이런 것을 하다보면 분노를 넘어 헛웃음이 나온다. 육두문자도 나오기도 하고.

어쩜, “지지”냐 “아니냐”는 단순한 이분법 논리는 저급한 정치 못지않는 위험하다.

내가 우파에게 묻는다. 서울시장 김문수 선택이냐, 태극기 후보를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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