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애
▲ 사진=안동데일리 / 정미애씨가 "삼성 이재용 부회장 석방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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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날 대한문에 온 사람들이 묻는다. 보통사람들은 그냥 서있기도 힘든 혹서인데 땀 한방울 안흘리고 ‘삼성 이재용 부회장 석방하라’는 피켓을 들고 땡볕에서 몇 시간째 꼼짝도 않고 서있는데 두팔이 안아프냐고 묻고서는 내 사진을 찍고 엄지척을 하고 사라져 간다. 나는 물 한방울을 마시지 않고 정성을 다해 삼성 이재용 부회장 석방하라는 피켓을 들었다.

四月 초파일(初八日)이면 해인사 대적광전에 가장 큰 연등을 이건희 회장님이 다시면 나도 이건희 회장님이 다신 큰 연등 옆에 나도 큰 연등을 달았다. 박두을 여사님과 이병철 회장님께서 결혼하시고 사시고 이건희 회장님께서 어린시절을 보내신 대구 인교동에서 나도 태어났다. 나의 어릴적 놀이터는 넓은 달성공원이었다. 달성공원을 뛰어 다니고 그림을 그리러 다니며 서문시장 옆 계성국민학교를 다녔다. 삼성의 모태가 된 대구 인교동 삼성상회와 이병철 선대 회장님의 고택이 있는 인교동은 이건희 회장님께서 어린시절을 보내시며 뛰어 노시던 곳인데 나도 똑같은 그 공간을 내가 13살까지 내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다. 어린시절 나는 아버지를 따라 이병철 회장님을 여러번 만났었다.

선대 이병철 회장님께서 이건희 회장님을 후계자로 지명하시고 이건희 회장께서 삼성그룹을 물려받게 되시고 그룹 업무 파악하셨을 즈음 나는 이재용 부회장보다 일년 빠른 1990년에 삼성에 입사했다. 당시 삼성의 재계 순위는 2위였다. 삼성TV가 해외 백화점 진열대에 먼지가 쌓여 진열될 때였고 이건희 회장님께서는 이런 먼지 쌓인 삼성TV를 보시고 마음 아파하셨으며 일본 전자제품보다 월등히 좋은 제품을 개발하시기 위해 반도체 개발과 투자에 돈이 들어가기만 할 때였지만 늘 연구하셨다. 그런 이건희 회장님을 위해 나는 재계 1위 초일류 삼성을 만들기 위해 미쳐 일했고 돈을 거적해내기 위해 내 청춘을 불태웠다. 1993년 이건희 회장께서 프랑크푸르트 新경영선언을 하시면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또 “남의 뒷다리 잡지마라”고 하시며 잘하는 사람에게 당근을 주라고 하셨다.

나는 이때 남편과 자식도 없는 내가 “삼성에 내 뼈를 묻으리라”고 결심하고 ‘열과 성’을 다하여 충성을 다했고 마침내 재계 1위를 석권하고 글로벌 삼성이 되는데 내 모든 것을 바쳐서 해냈다. 삼성은 내 유년시절이요,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23살에 입사하여 20년을 일한 내 첫 직장이며 나의 20대, 나의 30대, 나의 40대를 바친 내 청춘이다. 내가 다닌 삼성은 내게 있어 석.박사이상의 배움을 주는 터였으며 삼성의 업무는 내게 시스템을 가르쳐 주었고 나를 살아있는 인간 빅데이타가 되게끔 해주었다. 해외연수로 많은 견문을 넓혔고 훌륭하고 좋은 선후배들과 일할 수 있는 지상 최고의 글로벌 초일류 그룹이었다.

내 나이 지천명(知天命)인 50代에 내 인생의 전부인 삼성과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위기에 처한 것을 그냥 불구경하듯이 두고 볼 수만 없어서 김해 경남매일언론사 사장으로 지상발령 내려는 것을 마다하고  삼성 이재용 부회장 석방을 위해 일년전 아스팔트로 나와 투쟁에 나섰다. 내가 직접 작사하고 내가 직접 작곡한 ‘용의 아리랑’을 부르며 ‘삼성 이재용 부회장 석방운동’에 매달렸고 내가 주장하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 석방하라’는 뜻을 TV에 내보냈다.

1991년 삼성에 입사한 이재용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대와 미국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2001년 3월에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가 되어 돌아왔다. 이재용이 해외에서 10년간 편히 공부하는 동안 나는 10년을 삼성을 위해 미쳐 일해서 연봉은 10억을 받게 되었고 전사여왕을 하고 안양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는 최고의 삼성인이 되었다. 그룹의 핵심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다. 삼성전자의 운전자금을 걱정할 만큼 어려웠던 1990년대를 거뜬히 뛰어 넘어 이제는 선대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그토록 원하시던 사업보국, 글로벌 초일류 삼성이 된 것이다. 나와 함께 공부했던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은 내게 "여왕님의 집념이 대단하시다"라고 말해 주었고 이건희 회장님께서는 나를 "천재이며 항공모함이다"라고 말해 주셨다. 이재용 부회장과 나는 신세계 강남점에 있는 아동복 코너에서 같은 옷을 사서 아들과 딸에게 입힐 만큼 취향이 비슷한 것 같다. 회오리 바람속에서 물 없이 바짝 마른 좁은 밀폐속으로 잠시 이동했을 뿐, 이제는 껍질을 바꿔 입었으니 건강하게 부디 더 높이 날아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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